일상에쎄이

나의 세계는 자폐적 세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Major Tom 2020. 9. 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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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 파업이 가능한 슬픈 이유 / 양창모

양창모 호호방문진료 센터장·가정의학과 전문의 “어제 항암치료 때문에 만난 의사가 의사 파업 때문에 밤을 새웠다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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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안에서도 사람들을 만났지만 접촉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비누처럼 서로 미끄러져 내려갔을 뿐이다. 증상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의사로서의 기능에 충실할수록 나는 환자들의 삶에서는 멀어져갔다. 내 고민, 의사들의 고통은 들여다보여도 당신의 고민, 환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의사놈들’이 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살 만해서라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그 돈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버느냐에 따라 나는 ‘의사놈들’이 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 ‘의사 파업이 가능한 슬픈 이유’, 양창모 중


의사 파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한 의사분이 작성한 글의 특이한 표현이 자꾸 생각나서 오늘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그는 진료실에서 의사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할수록 환자들의 삶에서는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진료실에 앉아 오고가는 환자들을 위해 진단서를 적어주는 의사는 환자들의 물리적인 상처와 통증 그 이상을 보지는 못한다. 환자들을 굳이 돈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어떤 나쁜 의도를 가진 의사가 아니더라도 목적과 수단이 분명한 진료실이라는 그 공간 속에서는 환자의 일상적인 삶, 진료실까지 오기까지 환자가 거쳐야 하는 수많은 문턱들을 알 턱이 없다. 그는 진료실을 ‘자폐적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이러한 현상을 지적할 수 있는 아주 날카로운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진료실 안에 있는 의사들뿐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범위를 넓혀놓았지만 그것은 나만 이렇지 않을 것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당되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 죄책감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할 틈도 없고 의지도 없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누구보다 가깝게 붙어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나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매일 트랙을 달리면서 항상 마주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관심이 없다.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회나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저 멀리 미국에서 남한의 2/5에 해당하는 면적이 산불로 소실되어 사망자가 생겨도, 벨라루스에서 약 20여년이 넘게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에 대항하다가 죽어가는 벨라루스의 사람들 소식을 들어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응급실이 부족하여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을왕리에서 음주운전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50대 가장의 뉴스를 보아도 그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감정과 삶에 온전히 공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사실 공감해야겠다는 의무감은 생기지만 그것이 실제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는 않는다. 나의 삶에서 너무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타인의 삶에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나도 나 자신을 나만의 자폐적 세계에 가둬놓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자폐 장애인들을 만난다. 실제로 자폐 장애인들은 타인의 삶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폐’라는 말은 아마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불가능한 채 자기 폐쇄적인 자폐장애인들의 특징을 담아서 고안한 말일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재한 채 살아가는 나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 사람일 것인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