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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후기-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로버트 달)

by Major Tom 2020. 2. 21.

미국헌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나?

로버트 달은 미국에서 유명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주주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정치외교학과 수업을 몇번 들었던 적이 있는데, 민주주의에 관해서 배울 때에는 거의 항상 인용되고 하는 학자가 바로 로버트 달이다. ‘미국헌법과 민주주의’는 바로 로버트 달의 책이다. 굉장히 난이도가 있는 책일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간단하고 명확했다.

‘미국헌법과 민주주의’라는 한국이름보다는 영문명인 ‘How Democratic Is the American Constitution?’을 보면 이 책의 주제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로버트 달은 기본적으로 미국 헌법이 완벽하고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신화적인 생각들을 깨뜨리기 위해 펜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어떤 대안도 그에 적합한 정치문화적 기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치문화적 기반이 없는 조건에서 합의제적 제도를 이식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이전 남부 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합의제에 적합한 정치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합의제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 디자인은 소수파가 자신의 특권을 위협할 수 있는 어떤 변화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곤 했다. 또는 그러한 거부권을 위협의 무기로 해서 지역적으로 특권화된 소수파들이 다수파로부터 양보를 강요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남북전쟁 이후 남부 주들은 미국 내 나머지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민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자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미국의 정치문화에서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네덜란드와 같이 합의제에 바탕한 헌법 디자인이 그 장점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p. 252

달은 미국 헌법을 만든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헌법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재 미국 헌법이 신화적으로 구현된 것처럼 완벽한 헌법이 아니라는 점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생각보다 민주성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연방 대법원이 자칫 잘못하면 민주적인 의사를 자의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위헌법률심사권이나 소수의 주들을 과대대표하는 상원의 구조, 혹은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다수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의사의 반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거구조 등이다.

“법원의 판결이... 민주적 기본권의 영역 내에 있을 때, 그들의 활동과 위상을 문제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광범한, 민주적 기본권의 문제 영역을 넘어설수록, 그들의 권한은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선출되지 않은 입법부가 되기 때문이다. 헌법을 해석한다는, 혹은 심지어 헌법입안자들의 모호하고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입법 의도를 파악한다는 명목하에서, 대법원은 선출된 관리들이 맡아야 할 중요한 법률과 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p.238

저번에 작성한 국순옥 선생님의 ‘민주주의 헌법론’ 리뷰와 로버트 달의 ‘미국헌법의 민주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헌법이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 위해 분명한 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원이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는 역할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결정들을 억압하는 기제가 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헌법에 대한 내용을 주로 하고 있지만 의미있는 구절들이 많다. 이 책의 뒷편에 나와있는 The New Yorker의 리뷰가 인상깊다: “달의 전제는 미국헌법을 “민주주의라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이 최선의 헌법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이성적 동의에 바탕하여 채택하고 유지하는 법률과 정책에 따라 자신을 통치하는가 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