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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쓰는 나이

by Major Tom 2020. 5. 8.

중고등학교 때는 지우개를 참 많이 썼다. 내가 특히 좋아하던 지우개는 아인 지우개였는데, 매우 깔끔하게 지워지면서도 지우개가 잘 부셔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우개를 썼다는 것은 볼펜이 아니라 샤프와 연필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는 것.

요즘에는 볼펜을 거의 매일 쓰면서 공부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지울일도 별로 없게되고 지우개도 온전한채로 몇년간 필통에 보관되어 있는 중이다. 가끔씩 샤프를 쓸 일이 있을 경우 가끔씩만 지우개를 사용한다.

중고등학교에서의 삶, 청소년기에서의 삶은 마치 적고 지울 수 있는 것처럼 실패와 재기를 반복한다. 실수하더라도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므로 큰 걱정이 없다. 그렇지만 흑연으로 적은 흔적들은 종종 번지곤 한다. 청년이 되면서 시작하게 된 볼펜의 삶. 볼펜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한번 걸어가는 길은 되돌리기가 힘들다. 종이 자체를 찢어버리거나 아예 구겨서 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나의 청년의 삶은 청소년기에 비해 지워서 되돌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볼펜으로 그려진 청년의 삶은 지워지지 않고 번지지 않는다. 명료하게 남아 삶의 줄기를 더욱 두껍게 만든다. 내 삶의 흔적들이 선명한 선으로 남는다. 나중에 더 크면 만년필을 사용하는 삶. 그 때는 만년필로 그려지는 서명 하나하나가 굵고 강력하게 삶의 자국을 남기게 된다. 각종 계약서, 약속, 의견, 주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되돌리기는 힘들다.

그저 B 샤프심으로 그려지는 삶의 정도가 가장 적당한 것 같은데 시간은 샤프심을 자꾸만 부러뜨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