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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by Major Tom 2020. 7. 24.

오늘도 그는 나에게 식권을 건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항상 구겨진 채로 오른쪽 주머니에서 식권이 나온다. 식권을 건네주는 손은 자꾸 물어뜯어서 그런지 맨날 까져있다. 식권이 필요없는 날에도 무조건 식권을 나에게 가지고 온다. 어쩌다 한번 다시 돌려주려고 하면 강하게 거부한다. 물론 말은 못해서 행동으로 거부를 표현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식권이 내 자리에 있는지 체크하러 온다. ‘식권 건네기’ 작업이 끝나면 ‘옆 교실 들어다보기’를 실시한다. 옆 교실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항상 감시하는 듯하다. 문이 열려도 굳이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이제 그곳 소속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벌써 그와 만난지 1년 반이 넘어가는데 이런 루틴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식권을 건네는 대상만 바뀔 뿐 그대로 이어질 것 같다.

다른 한명의 루틴은 더욱 뚜렷하다. 항상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분은 창문 앞에 의자를 가져다주면 하루종일이고 거기에 앉아있는다. 그곳이 좋아서 앉아있는 것인지 누군가가 그곳에 앉아있으라고 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매일 펭귄같은 걸음걸이로 들어와 본인이 앉을 자리를 탐색하고 창문 앞에 의자가 있다면 항상 그곳에 가서 앉는다. 햇볕이 강하게 비추는 날에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앉는데, 이런 날에는 얼굴이 반만 벌겋게 익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항상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이 있는데 이런 루틴을 평생 이어간다면 언젠가 골반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물을 마실 때는 본인의 컵을 집어들고 또 다시 펭귄같은 걸음걸이로 정수기에 다가가 물을 가득채워 마시고 컵에 물이 남아있지 않도록 컵을 뒤집어서 오는데 이 과정에서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곤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버튼, 내려가는 버튼 모두를 눌러놓는 습관이 있는데 그럴때마다 다른 층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까지 최소 1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30초 동안 열려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에는 항상 두 개의 수도꼭지를 모두 틀어놓는다. 왼쪽 오른쪽으로 수도꼭지를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돌리며 종종 물이 세면대에 가득 찰때까지 기다리곤 한다. 만약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양 쪽 세면대의 수도꼭지가 같은 뱡향으로 되어있다면 이 분이 한번 손을 씻고 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바깥에서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으면 특별히 새로운 것을 하지 않고 그들만의 루틴대로 살아간다. 30년 뒤에도 비슷한 모습일지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루틴 외 활동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 어떤 활동을 할 때 그들이 행복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들때가 많다. 물론 미소를 보이거나 간단한 춤을 추는 등의 동작 힌트를 통해서 만족하고 있음을 대충 파악할 수 있는 때가 있긴 하다. 그들이 자신들 밖의 세상에 전혀 관심이 없어보여도 그들이 행복해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냈을 때는 나름대로의 쾌감이 있다.

자폐장애인을 처음 마주치게 된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볼때 생소한 것이고 떄로는 불규칙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알아차리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들의 행동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 다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하고싶고, 맛있는 음식을 하나 더 먹고 싶고, 누구로부터 강요당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공통적인 마음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을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척해버리지 말고 패턴을 찾아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포용력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