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리뷰를 써봅니다. 저번에 법학 기초 책을 하나 읽었다고 포스팅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 우연히도 법학 전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책들이 여러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권리가 투쟁을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권리를 위한 투쟁’의 루돌프 폰 예링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법한 책입니다.
치열한 법정은 실제 이야기입니다. 예일대 교수인 고 교수와 인권 변호사인 마이클 래트너를 필두로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이 관타나모에 체류된 아이티 난민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재판을 통해 정부와 계속 싸워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티는 수십년간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적으로 선거를 구성하여 그들의 대표자를 뽑았으나 1991년 다시 군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수천, 수만명의 정치적 난민들이 아이티를 탈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들을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해 미국에 받아들이지않고 오히려 관타나모라는 쿠바의 미국 해군기지에 억류시키거나 아이티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을 해상에서 송환시키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아이티 난민들은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커녕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관타나모에 갇혀있거나 본국으로 송환되어 정치적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당국의 조처에 대해 난민 인권 변호사들이 모여 정부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고홍주(고 헤럴드)를 비롯한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은 이들이 분류 절차(미국 입국 대상자인지 아이티로 송환해야 할 사람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접견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소송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사람을 모으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소송과정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길어졌는데, 따라서 상대도 부시 행정부에서 다음 클린턴 행정부로 바뀌어가며 아이티 난민들을 위한 소송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소송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큰 틀은 꾸준히 유지되었습니다. 고 교수를 비롯한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의 논리는 1951년 난민 협약 33조 1항의 강제송환원칙과 미국 내의 난민법이 관타나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정부 측 입장은 미국 헌법을 비롯한 법률의 효력은 미국 영토 내에서만 인정되는데 관타나모는 미국 영토가 아니고 따라서 공해상에서는 난민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관타나모는 사실상 미국이 배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영토라고 고 교수와 로스쿨 학생들은 주장하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연방 대법원까지는 이 논리가 쉽게 먹혀들지 않습니다.
갖가지 재판의 성공과 실패를 거치며 결과적으로는 난민들에게 유리한 판례를 남기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부는 관타나모 난민들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대신 이 판결의 판례를 무효화시켜달라는 제안을 했고, 고 교수와 예일대 학생들 측은 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그러한 협상이었기에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국제 인권법 사건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해봤는데 의외로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책 곳곳에도 나와있듯이 현실을 준비하는 로스쿨 학생들은 사건 처리에 항상 집중해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아까도 말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00% 난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고 중간에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중간에 포기한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었고 자발적으로 나선 일이니만큼 자발적으로 포기의 결정을 내리는 것또한 자유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의 현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대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일이 분명 쉽지 않음을 이 책으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생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재판에서 나오는 발언들과 논리들도 같이 보여주면서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재판이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재판 진행과정을 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재판이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미 이겼다고 하는 재판을 왜 다시 진행하는 것인지 종종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