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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접촉이 없는 사회

by Major Tom 2020. 8. 14.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957777.html

[프로파일러 이수정] 만나지 않는 세상의 특별함

프로파일러

www.hani.co.kr


아침부터 좋은 글을 만났다. ‘만나지 않는 세상의 특별함’이라는 제목을 가진, 한겨레 신문의 뒤쪽에 있는 칼럼 중 하나였다. 요즘엔 신문을 앞에서부터 읽지 않고 뒤에서부터 읽고 있는데 덕분에 좀 더 깊이있는 생각을 가진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대면 접촉이 줄어들었고 강의를 하는 글쓴이 역시 온라인을 이용한 비대면 강의를 많이 진행한다. 하지만 온라인 비대면 강의는 청중의 반응을 알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나타난다. 만나지 않는 세상의 문제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결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타인과의 시선 접촉은 공감능력을 향상시키고 실제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70%~90% 정도의 소통은 비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면 접촉이 없다면 공감능력도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공감능력이 본능적인 폭력성을 억제하는 매우 중요한 기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감능력의 결여가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점은 더욱 커진다.

논리적으로 이 칼럼을 분석한다면 타인과의 시선 접촉이 떨어지는 것이 공감능력 하락으로 이어지는지, 온라인 강의가 타인과의 시선 접촉을 떨어뜨리는지, 공감능력이 인간의 폭력성을 억제하는지를 따져 보아야겠지만 연구가 목적이 아닌 나로서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타인과의 대면 접촉이 공감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온라인 강의가 타인과의 시선 접촉을 떨어뜨리는지는 중요한 전제이므로 경험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대충이라도 살펴보고 넘어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같은 내용이라도 텍스트를 통해 전해지는 것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텍스트는 그 말 주변에 담겨있는 맥락을 담지 못하지만 텍스트를 말하는 순간의 얼굴과 몸짓은 그 맥락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칼럼의 글쓴이는 대면 강의를 진행할 때는 청중의 반응이 자신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잘못 진행하고 있으면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옴으로써 피드백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대면 발화는 실제로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반응이 나타남으로써 쌍방향 교류가 진행된다. 하지만 텍스트 작성자가 바라보는 것은 글자일 뿐이지 상대방의 반응이 아니므로 일방향 전달에 그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면 발화는 텍스트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며 쌍방향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온라인 접촉은 텍스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가? 온라인 접촉도 사실 직접 대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상으로 서로의 얼굴을 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면 발화랑 일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물론 대형 강의를 진행하거나 할 때에는 전달자가 청중들의 반응을 온라인으로 살피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은 수의 사람들이 온라인을 매개체로 소통할 때에는 텍스트보다는 대면 발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온라인 강의가 타인과의 시선 접촉을 떨어뜨리는지는 참여자의 수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면접촉은 공감능력과 관계가 있을까? 만약 비대면접촉을 통해서도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전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현대인들의 공감능력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요즘 사회는 공감능력의 결여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나같은 경우도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도없이 듣고 읽었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함께 생활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없었다. 분명 비대면 접촉만으로 이루어지는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 비대면 접촉 속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도 그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전달이지 상대방의 처지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관심있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에 공감할 기회는 더 떨어진다. 확실히 대면접촉은 비대면접촉에 비해 공감능력과 더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대면접촉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연적으로 다가오는 공감의 기회는 줄어들지라도 비대면접촉은 현실에서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접촉을 가능하게 해준다. 교류의 질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교류의 수는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온라인으로만 교류가 이루어지는 상황에 사람들도 점차 적응하고 있다. bj나 라이브를 진행하는 유튜버들은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을 읽어가며 화면 속에서도 청중의 반응을 파악한다. 채팅창에 댓글을 쓰는 사람들도 다양한 표현방식을 개발하여 텍스트가 가진 한계(맥락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뛰어넘으려 노력한다. 비대면 접촉이 대면 접촉에 비해 몇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어차피 지금은 대형의 대면 접촉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차라리 비대면접촉을 활용하면서도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