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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영화 후기

[연극후기] 파우스트 엔딩- 국립극단 / 명동예술극장

by Major Tom 2021. 3. 3.

연극을 좋아하지만 많이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대학교 1학년때 누군가가 강의실을 돌면서 3만원에 많은 연극이나 공연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카드를 판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샀고, 몇번 공연을 보러갔던 기억이 있다. 다들 사기라고 하지만 나는 공연을 꽤나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사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파우스트 엔딩도 내가 먼저 찾아서 알게된 것은 아니고 어머니가 추천해주시고 예약까지 해버리셔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주 인상깊은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작품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학 작품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사실 나는 파우스트에 대해 들어는 봤어도 책을 펼쳐본 적은 없었고 다만 머릿말에서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한 책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 극의 제목이 '파우스트 엔딩'이니까 그래도 원작인 '파우스트'를 한번쯤은 읽고가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얼른 전자책으로 빌려서 이틀동안 열심히 봤으나 괴테가 평생에 걸쳐 쓴 역작인만큼 그 양도 상당했고(대략 1,2부 합쳐서 700페이지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부 중간 정도까지밖에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극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파우스트'는 문학 작품이고 연극 대본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실제로 괴테 생전에 독일에서 파우스트를 주제로 극을 올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파우스트 1부는 여러차례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파우스트 엔딩'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하지만 연출자인 조광화씨가 본인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재창작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름이 '파우스트 엔딩'인만큼 원작과 엔딩 부분이 다르고 이외에도 주인공인 파우스트가 '파우스트 엔딩'에서는 여자인 김성녀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하지만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 박사가 계약을 하고 인간 현실을 떠돌면서 욕망을 풀어해치고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한다는 주요 플롯은 같다.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2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공연을 올린다. 국립극단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대학생의 경우 R석을 무려 15000원에 볼 수 있는 엄청난 할인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공연을 보러온 대학생들이 많았다. 코로나에 대비하여 열체크와 손소독, 그리고 마스크 착용은 필수로 하고 있고 안에서 음료를 섭취하지 못하며 자리를 한칸씩 띄어 앉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칸씩 띄어앉은 덕분에 가방이나 옷가지를 옆에다 둘 수 있고 여유롭게 자리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좋았다. 

 

 

프로그램책은 입구에서 30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굳이 프로그램책을 현장에서 사지 않아도 국립국단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책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책에 공연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으니 공연 전에 꼭 한번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진촬영은 (당연하겠지만) 커튼콜때만 할 수 있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제대로 찍지 못한게 안타깝다. 

 

 

- '파우스트 엔딩'의 내용에 대하여

원작은 매우 길고 방대하지만 '파우스트 엔딩'은 100분, 핵심만 담았다. 핵심만 담다보니 전개가 빨라 쉬는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00분 내내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었다(관객은 사실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100분 내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100분만에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배우들의 대사에 비유적인 표현을 담기보다는 관객들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설적인 표현들이 많이 담기게 되어 원작 파우스트에서보다는 풍미(?)가 약간 떨어진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물론 공연에서 그 비유를 모두 담았더라면 굉장히 극이 지루해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출자가 풍미를 적당히 유지하면서도 극을 적절히 긴장감있게 끌고가기 위해 그 균형을 잘 잡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파우스트 엔딩'에 좋은 점수를 주고싶다. 

신이 인간이 모두 멸망하고난 후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개조인간'인 호문쿨루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천국으로 인도할 잠재력을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신이 인간을 특별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우리가 인간이니까 신이 선택했다고 믿을 뿐이다. 신은 사실 코끼리를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신이 인간이 사라지자 망설임없이 호문쿨루스를 선택한 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을 절대적인 존재에서 상대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도 별 다를바 없는 여러 존재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포인트는 파우스트가 여성인데 속세로 나와 사랑하게 되는 존재가 여성인 그레첸이라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파우스트가 남성이고 그가 속세로 나왔을 때 예쁜 여성을 만나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원초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파우스트 엔딩'에서는 파우스트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레첸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외모 등 외적인 요인이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파우스트가 그레첸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 사랑의 매개 요인이 극 내에서 묘사되어야하는데, 연출자는 그 요인을 그레첸의 임신과 출산으로 삼은 듯하다. 남편에게 외면받고 만삭인 상태에 있는 그레첸에 파우스트는 심적으로 공감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해주면서 인간적인 유대와 친밀감을 쌓는다. 거기서부터 나름대로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남녀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연출자가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원작과 차이가 나게 되는 대표적인 부분으로서 이 장면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신선했지만 파우스트가 그레첸과 임신과 출산이라는 주제로 친밀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그 공감대가 좀 얕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감정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표현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파우스트를 따르던 여러 제자들을 지식 탐구에만 몰두하는 미친사람들처럼 연출해놓았는데 워낙 배우분들이 연기를 잘하셔서 그런지몰라도 진짜 미친 과학자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미침'이었던 것 같다. 특히 수제자(?)인 바그너 역을 맡으신 분은 진짜 무서울정도로 본인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시는 것 같다. 너무나도 미쳐보여서 꺼림칙한 느낌까지 주는게 연출자님의 목표였다면 매우 성공한 듯하다. 프로그램 북 내용 중 이 부분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가져와봤다.

파우스트 엔딩 프로그램 북 중에서



이 극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엔딩 장면이다. 열정에 불타오르고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결국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만 파우스트 박사. 원작에서는 파우스트가 신에 의해 구원받게되지만 (물론 책을 아직 거기까지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 프로그램 책에 나와있는 스포일러...로 인해 알게 되었다) 극에서는 파우스트가 본인이 초래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옥을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시대와 맞는 재창조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괴테 시대에 비해 인류가 초래한 변화들이 자연과 지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고 그에 걸맞는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지에 대해 아직까지도 우리는 확실한 결과를 내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인류 멸망에 대한 책임으로 결국 지옥에 가게 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지옥도 없다. 그냥 멸망하게 되면 그 이후는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멸망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멸망을 막을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에서처럼 한 사람에게 책임을 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책임을 져야하는 시대이다. 

 

 

들개가 아주 사납게 생겼다. 악마 역할을 하신 박완규 배우분이나 다른 연기자분들 모두 너무나도 본인 역할을 잘 해주신 것 같다. 박완규 배우분 중간에 대사 하나 틀리는 것을 들었다. 악마 그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미 느껴져서 좋았다. 

 

 

꼭 기회가 되면 가서 보시길 바란다. 특히 대학생이라면, 특히 24세 미만이라면 얼른 예매해서 혜택을 누리도록 하자. 공연을 보기 전에 파우스트를 꼭 읽을 필요는 없지만 파우스트를 읽으면 극이 원작과 어떻게 다른지, 연출자가 어떤 지점을 염두에 두고 재창작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특히 원작과 엔딩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원작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두면 극을 이해하는 데 좋다. 시간이 없다면 국립극단 사이트에서 프로그램 북을 받아서 읽어보도록 하자.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