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얕게 배웠던 통기타 솜씨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밴드에 들어갔다. 밴드에서도 당연히 기타를 맡아서 열심히 연주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로와 전혀 관련 없는 활동이긴 했지만 그때 밴드에 들어가서 활동하지 않았으면 지금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밴드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 그리고 곡에 따라 키보드가 등장한다. 전통적인 락 음악에서는 일렉기타 소리가 강력하게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그 외의 음악에서는 기타 소리가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통기타로 백그라운드 사운드를 만들어주는 기초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심지어 거의 들리지도 않게 몇몇 음들만 곡 중간중간에 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소리가 청중에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실제 공연에서는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는 볼륨보다 조금 더 높게 음량을 설정할 때가 많았고 조금 더 소리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강조해서 기타를 쳤던 경우가 왕왕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바쁘기도 하고 나이도 많이 먹어서 자연스럽게 밴드 활동은 접게 되었지만 종종 그때 생각이 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되짚어보곤 한다. 오늘은 에피톤프로젝트의 ‘새벽녘’이라는 곡을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많은 악기가 등장하면서도 어느 하나 자기를 뽐내려고 하는 악기가 없더라. 심지어 보컬도 가창력을 자랑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의 곡에 녹아들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청중들은 음악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지 특정 파트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파트들이 빛나는 것은 전체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게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함께 녹아들어야 했었던 그 때 나를 좀 더 강조해보겠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나갔던 내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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