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을 내가 처음 알게 된 때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할 때였다(서해안 고속도로가 맞나?). 그 때 정재형은 영화음악 작곡가로 소개되면서 정형돈과 짝을 맺었더랬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순정마초'.
당시 이 곡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애초에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가요제에서 보여준다는게 처음이기도 했고 노래의 감성 자체도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던 곡이고 정형돈이 상당히 마초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알게된 정재형. 그 뒤로 정재형은 예능에 자주 나와서 종종 가벼운(?) 웃음을 보여주며 예능계의 뉴페이스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더라. 원래 본업이 개그맨인 사람이 아니니 예능에 계속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작곡가였으니까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갔어야 할 것이지만 2012년 이후 8년 동안 그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운우리새끼'에 정재형이 나왔을 때 한 말에 따르면 예능에 계속 나오면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무슨 음악을 앞으로 해야할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새로 앨범을 냈다. 나는 그 전에 정재형이 무슨 음악을 했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정재형이라는 작곡가를 음악적으로 마주하는 첫번째 순간이었다. 앨범의 이름은 Avec Piano. 번역하면 '피아노와 함께' 정도가 될 것 같다.
분류를 하자면 클래식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영화음악 느낌도 나는 것 같다. 피아노의 반주 속에 바이올린이 독주를 펼치거나 오케스트라가 뒤를 받친다. 처음 들을 때는 큰 감흥이 없다가 두 세번 듣고 나니 머릿속에서 선율이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가 곡 전체를 감싼다. 평소에 들을 음악이 없어서 이리 저리 방황하던 나였기에 오랜만에 정착할 수 있는 앨범을 찾았다는 것이 반가웠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도 최근에 구매했는데 주변 소리를 확 죽여줘서 잔잔한 음악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가을 날씨에 잘 어울리고, 특히 밤에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음악이다.
내가 이 앨범에서 갖아 좋아하는 곡은 이 앨범의 첫번째 곡인 Mistral. 프랑스 남부 지방의 북풍, 북동풍이라는데 나야 거기서 바람을 맞아본 적 없으니 곡에는 반쯤만 공감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가보지 않았더라도 곡의 아름다운 선율에는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다. 최대한 방해받지 않은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좋고, 여러번 들어서 선율을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을 때 더 잘 들리고 더 잘 와닿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 듣게되는 클래식 음악은 귀에 잘 담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짧게 끊기고 반복적인 루프를 가지고 있는 대중 음악에 익숙해진 나머지 긴 호흡과 불규칙적인 (혹은 평소에는 잘 듣지 않았던 것에서 기인하는 어색함) 패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앨범에 대해 상세한 평을 남기는 것은 내 능력치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적어도 일반 사람인 내가 듣기에 좋더라 하고 추천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짧은 글을 남겨본다. 음악은 음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잘 들리는 법이니까 앨범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다 싶었다.
날씨도 좋고 음악도 좋다. 에너지를 다 쓴 듯한 월요일이지만 이런 데서 작은 행복을 챙겨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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