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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쎄이

복무를 마치고 장애인복지관을 떠나며

by Major Tom 2020. 11. 3.

2019년 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정신없던 대학 생활을 뒤로하고 신속하게 군 입대를 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해 4급 판정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었고 내가 22개월간 근무할 장소는 바로 장애인 복지관이었다. 장애인 복지관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냥 경쟁률이 가장 낮았기 때문. 2.5:1 이었던 경쟁률. 빠르게 군대에 가고 싶었던 나에게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선택했고 바로 붙었다. 사회복무요원들이 한번에 선택한 곳에 가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내가 맡은 일은 발달장애인 프로그램 지원이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 10명 가량이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 복지관에 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발달장애인들이 그 프로그램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장애인은 크게 신체장애와 발달장애로 구분할 수 있고 또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장애로 구분된다고 한다. 내가 만난 이용자 분들은 지적장애가 있거나 자폐장애가 있거나 지적장애와 자폐장애를 모두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다. 장애인에 관한 이런 기초적인 지식들은 복무 초반 2주간 진행하는 사회복무요원 교육을 통해 배웠다. 물론 그 강의를 제대로 듣는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는다. 

2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이용자분들도 있고 처음에 있었다가 나간 이용자분들도 있고 중간에 새로 들어온 이용자분들도 있었다. 복지관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어디 특별한 곳에 가는 것은 아니다. 장애의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들이 따로 갈 수 있는 곳은 특성상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 있거나 더 좋은 복지관에 가거나 더 알맞은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복지관에 가거나.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발달장애인 이용자 분들이 반년 이상 복지관조차 오지 못했다. 이후 복지관에 왔을 때 이용자분들께 그동안 뭐 하면서 지냈냐고 여쭤보면 그냥 집에 있었다고 하거나 주변 공원을 조금 돌아다니는 수준의 활동을 했다고 답하신다. 복지관이 그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복지관이 그동안 제공했던 돌봄의 부담을 발달장애인 보호자 분들이 온전히 떠안아야 했으므로 그들의 스트레스도 극심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돌발행동이 남에게 위험을 끼치는 형태로 나타나는 발달장애인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더 폐쇄적인 시설인 주간보호센터로 가게 된다. 

복지관이 엄청나게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난타수업, 사회적응교육, 캘리그라피, 생활체육, 요가수업, 심리미술, 음악수업, 생활용품 제작, 원예수업 등. 프로그램이 자주 바뀌는 편은 아니고 학습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매번 똑같은 프로그램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용자분들이 실제로 모든 활동을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의사표현이 거의 불가능한 발달장애인의 경우 만족도를 조사하기가 매우 어렵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관성적으로 ‘매우 만족’에 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관이 항상 꾸준하게 프로그램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그들의 삶 자체가 복지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매번 하루의 반나절의 돌봄을 복지관에서 제공함으로써 보호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로는 이용자들분들이 모든 프로그램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참여할 때 간간히 보이는 행복한 표정들, 복지관에 오지 못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실망하는 분위기, 오랜만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옛날보다 더 말이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한 모습 등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순간

나는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할만큼 이타적이고 봉사성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의외로 내가 복무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은 나의 지원으로 인해 이용자분들이 행복해할때였다. 물론 나 덕분에 그들이 행복한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들, 평소에는 가만히 앉아만 계시던 분이 웃음을 띄며 박수라도 치며 참여할 때, 음악에 맞춰서 자기 나름대로 춤을 출 때, 만든 음식을 싹싹 비워서 맛있게 먹을 때,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등등. 하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은 모든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하던 한 발달장애인분에게 꾸준히 색칠을 제안한 결과 결국 해내셨을 때. 물론 내가 처음 시도했던 것은 아니고 참여 안하는 수동적인 발달장애인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던 한 존경스런 강사님이 이끌어내신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분이 절대 색칠을 포함한 일체의 활동 참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은 경험적으로 얻어진 생각이었다. 처음에 계속해서 색연필을 제안하는 팔을 밀쳐내며 평소와 다름없이 거부의 의사를 보이던 그였지만, 차분히 안정된 상태에서 꾸준히 제안하자 색연필을 받아들고 색칠을 시작했다. 굉장히 놀라웠고 우리가 스스로 그에게 설정한 한계를 강사님은 적극적인 접근으로 깨뜨렸다. 어쩌면 그의 행동의 한계는 항상 주변인들에 의해 그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마도 그의 잠재력은 더 발현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계를 깨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습관에 젖은 이 이용자 분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것, 그 순간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보람차고 좋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발달장애인들과 2년 내내 반나절 이상 함께 지내다보면 당연히 힘들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착하고 순수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인 상황이 상대적으로 그를 약하고 순해보이게 만든 것일 뿐이다. 그 사람이 ‘사회적 강자’에 위치하게 되었을 때 그가 계속 착하고 순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발달장애인 그룹에도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서열과 라이벌 관계가 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선생님이 없는 공간에서는 명령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그리고 대등하게 싸우는 사람 등 권력관계가 드러난다. 아무튼 순수하지만은 않은 그들과 함께하다보면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잃어버린 물건에 과하게 집착하여 온 복지관을 다 뒤집어 엎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싸우는 경우, 삼계탕이 맛있냐 맛없냐를 가지고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 이유없이 나를 툭툭 치고 가버리는 경우, 혼자 중얼거리는 경우 등등.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종종 고민에 빠진다.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면 제재해야겠지만, 내게 신경쓰인다는 이유 혹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제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항상 스트레스와 화를 참아오곤 했다. 사실 그 사람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에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 명령하고 싶은 유혹은 강력하다. 사회복무요원이지만 그들의 보조관리자라는 지위에 있고 이러한 지위에 근거하여 명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속에서 갈등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이 복지관과 각자의 가정 외에는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복지관에서조차 내가 권력관계를 이용해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고 실제로 화를 한번도 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랬던 순간들을 반성한다. 


선생님들

복지관에 근무하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시는 강사님들, 세미나를 주최하시는 강사님들 등 발달장애인의 복지관 프로그램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이 많다. 몇몇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스트레스를 받을 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발달장애인들을 존중하며 대하는 모습, 수동적인 발달장애인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독려하고 참여를 제안하는 모습, 싫은 사람이 있더라도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이 대하는 모습(정말 쉽지않다.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싫어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종종 실패하곤 했다.), 같은 실수와 행동이 반복되어도 계속해서 상담하고 대답해주는 모습, 집중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분에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규칙을 정해서 행동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모습, 외부활동에서 외부인에 의해 발생한 차별적인 행태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 등. 운이 좋게도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고 많이 배웠다.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이분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 


나의 변화 

내가 앞으로 봉사를 하러 굳이 복지관에 찾아가지 않는 이상 발달장애인들을 살아가면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관련 뉴스나 소식이 들려오면 이제는 예전보다 한번 더 눈길이 가고 관심이 간다. 이제 이 복지관의 발달장애인들과는 헤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동네에 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회에 많은 수의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들과 함께한 2년의 시간이 참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최소한 이들의 존재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함께했던 이 시간이 그들의 문제에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대학생 때 사회연대를 한다고 열심히 교양도 하고 시위에도 참여했다. 농민과 연대하겠다고 농민학생연대활동도 기획하고 참여했다. 하지만 연대를 위한 기본 전제는 연대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고, 연대 상대방에 대한 공감의 기본 전제는 그들의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머리로만 존재를 알았으니 공감도 피상적이었고 실질적인 연대는 없었다. 내가 접한 발달장애인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감한다고 말하기도 아직은 버겁지만 적어도 이들의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바로 이 2년이었다. 


이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채로 자신들의 인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호자들의 돌봄을 국가가 충분히 분담하여 보호자들 역시 피보호자들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소망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기회가 된다면 직접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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