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타인과, 그리고 사회와 함께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항상 말하는 것이 해탈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이 공(空)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이란 것은 없는 것, 실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불교 얘기는 제쳐두고서라도 아무튼 인간이 사회를 통해 배우고 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다.
사회가 인간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관계로, 인간은 사회에서 삶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 우측 통행을 해야한다는 것,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는 것(물론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상대방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리면 안된다는 것 등을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과 관계된 부분에서는 선을 적당히 지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로부터 배우는 것 중에는 분명 좋고 유익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역사에서 항상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 같은, 다른 인간에 대한 차별을 은연중에 습득하게 된다. "여자는 힘이 약하다", "공영방송에서 동성애에 관한 내용을 다뤄서는 안된다.", "장애인은 더럽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은 격리해야 한다"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굉장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차별을 판단하는 법은 쉽다. 그 사람의 성별, 장애여부, 성정체성, 국가, 인종, 출신 등과 같은 요소 자체만으로 '어떠할 것이다'라고 판단하게 된다면 그것은 차별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소수자들도 사회로부터 차별을 배운다. 차별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배우게 된다. 미국에서 종종 흑인들이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오히려 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동남아 사람들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발달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나의 경우에도 사회적 소수자들이 오히려 다른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인다. 가령 발달 장애가 있는 분이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분에게 욕을 한다든지 말이다.
분명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지만, 쉽게 지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을 재생산하지 말고 착하게 지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처가 되라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말은 착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과는 관계가 없다. 장애인들이 100% 선한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정당하고 정의롭고 선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때려서 돈을 뺏어도 너는 그러면 안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위나 집단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사회가 부당하게 사회적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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