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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대학>의 팔조목(八條目)

by Major Tom 2019. 7. 19.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는 예로부터 내려져오는 유학 경전을 정리하여 하나의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주자가 말하는 유학 경전의 순서는 논어(공자)-> 대학(증자)-> 중용(자사)-> 맹자(맹자)이다. 논어는 공자의 말들을 제자들이 정리해 놓은 것이고 맹자와 중용은 저자가 나름 확실한 편이나, 대학의 경우 증자가 실제로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대학은 경문 1장과 전문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문 1장을 증자가 지었고 전문 10장을 증자의 문인들(제자들)이 해설했다고 주장하였다. 경문은 성인의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고, 전문은 성인에 버금가는 현인의 말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명확한 두괄식 구성을 띄고 있는 '대학'은 3강령과 8조목이 사실상 전부이다. 나머지는 이 삼강령과 팔조목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유교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구성되어 있다. 

팔조목을 병렬적으로 나열해놓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순서가 있다. 전문 1장 첫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천하에 명명덕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평천하)는 먼저 국가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치국),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집, 가문을 먼저 가지런히 해야하며(제가),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몸을 먼저 닦아야 하며(수신),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마음을  바르게 해야하며(정심),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하는 자는 뜻(마음의 소리)을 진실하게 해야하며(성의), 뜻을 진실하게 하고자하는 자는 지식에 이르어야 하며(치지), 지식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사물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한다(격물)."  

즉 천하에 밝은 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물에 있는 그 이치를 파악하여 앎을 완성하고, 그 앎으로 뜻을 확실하고 진실하게 하고, 확실해진 뜻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잡은 마음으로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하고,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확실하게 순서를 정해주고 있다. 서양 철학에서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안하고, 개개인의 계몽은 르네상스 이후에나 눈 뜨게 되는 것과는 달리 유교에서는 이미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철학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교를 현대적 의미의 개인주의라고는 볼 수는 없겠지만,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의 출발점이 개인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유교의 철학은 그 의미를 한번 되짚어볼만 하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부분은 '격물치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수기의 기초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고 마음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의지이지만, 이 마음의 의지(意)는 가장 기초적으로 천리(天理)를 궁구하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로부터 시작한다. 마음을 바로잡고 의지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지적 활동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유교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 때 불교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당나라가 쇠락하고 송나라가 새로 들어서면서 송나라의 통치자들은 애매모호하고 타락한(당나라 말기에 그렇다) 불교사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상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뜨게 된 것이 바로 유교이다. 유교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송나라 통치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유교가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격물치지'이다. 사물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 즉 이치에 대한 연구와 고민으로부터 '앎'이 시작하고 완성까지 이를 수 있다는 이 대목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실용주의적인 모습으로 시작했던 유교가 오히려 요즘에는 가장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처럼 느껴지는 모습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