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아직까지 나만의 공간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말할 뿐만이 아니라 내 속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심적인 공간도 의미한다. 아직까지 나의 모든 생각들을 털어놓고 묻어놓을 수 있는 좋은 구덩이는 찾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무엇인가를 적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일기장을 적기 시작한 것은 재수할 때였던 것 같다. 그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기장에 나의 생각들과 기분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적었던 것 같다. 그 일기장에는 나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재수가 끝나고 그런 기록들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다른 종이 쓰레기들과 함께 어디엔가 버려버렸기 때문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나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훈련소 때도 비슷한 것을 적었다. 그날 그날 했던 일들과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작은 노트를 하나 가져가서 매일 적었다. 그 때 적었던 노트는 아직도 내 가방에 있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이유는 집 안에 마땅히 놔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그것을 보는 것도 싫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는 걱정 없이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글 쓰는 것이나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을 잘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 아무에게도 이 블로그를 알리지 않은 것도 여기에 있다. 온전히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기 위해서.
하지만 사람이 또 간사한 것이, 만약 나만 간직하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다면 모든 글을 비공개로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sns를 하는 이유랑 비슷하게 또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동시에 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이야기는 공개하고 싶고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지만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밝힐 준비는 아직 안되어 있는 것이다. 내 이야기와 나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많이 쓸수록 그 거리는 점점 좁혀지긴 할 것이다. 특수하고 주관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특정하기가 굉장히 쉬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쯤 되면 나는 나의 이야기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그 어디에도 적을 수 없는, 마음 한켠에 숨겨놓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건 이 온라인 공간에도 풀어놓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결코 내 안에서 지워버릴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적는 글 곳곳에서 그 이야기의 흔적들이 하나 둘 묻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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