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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동호수를 물어보는 택배 문자 이야기/ '우한폐렴'은 왜 사용해서는 안되는 용어인가?

by Major Tom 2020. 4. 1.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자를 하나 받았다. 택배가 왔는데 동호수를 모르겠으니 동호수를 알려달라는 메시지였다.

"택배입니다00아파트동호수가기재가안돼어있네요"

어디 택배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그냥 달랑 한줄짜리 문자였다(심지어 띄어쓰기도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아 이건 스미싱이겠구나' 였다. 동 호수를 답하면 내 주소가 유출되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사기가 허술하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아침밥을 먹고 출근길을 나섰다. 

출근해서 주변에 문자메시지에 대한 반응은 나와 달랐다. 내가 너무 의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택배 기사였다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문자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에게 오기로 한 택배는 내가 기억하는 한 없었고, 어떤 사람이 동호수도 적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택배를 보낸단 말인가? 인터넷으로 스미싱에 대해 검색해보며 이런 사례가 또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떻게 이 사람을 신고하면 좋을지도 같이 검색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정말 사기인지 궁금해서 어디 택배냐고 물어봤는데 로젠 택배라는 답변이 왔다. 그래도 의심스러웠던 나는 운송장 번호를 물어봤으나 답은 주지 않고 직접 전화를 하셨다 (...) 막상 직접 전화가 오니 정말 택배기사인 것 같아서 동 호수를 알려주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 나서 전화를 끊은 끝에 이것이 사기를 당한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인터넷 반응들은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택배기사가 너무 바쁘게 일하다보니 확인 차원에서 종종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만약 이렇게 문자 보냈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거나 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으면 반송처리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점점 많이 보며 슬슬 안심하기 시작했고 택배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택배는 내가 옛날에 무심코 참여했던 이벤트를 통해 주어진 선물이었다. 별로 대단한 선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벤트 참여 당시에 주소까지 넣었는데 왜 동호수는 기재하지 않은건지 의문이다. 아무튼 택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과 택배기사님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기사님은 아마도 눈치챘을것이다.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컨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우연히 여성분 뒤를 따라서 밤길에 걷고 있는데 혹시나 오해받을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그래서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빠르게 그 사람을 앞지른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에 대한 억울함이다. 오해를 받는 상황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특히 그 오해가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정말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한다는 한국인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미국에서는 한 백인이 코로나를 조심하라는 전단지를 한국인이 사는 기숙사 방문 앞에다 몰아서 붙여놨다는 얘기가 있었고, 유럽에서는 한국인을 향한 혐오성이 강한 반응들이 SNS 상에서 만연하다고 한다. 외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중국인들을 '짱깨'라고 부르면서 비하하는 것이나 굳이 코로나19라는 명칭 대신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한폐렴'이라는 말을 고집하는 것은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한폐렴'을 써야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코로나19가 우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한폐렴'이라고 불러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칭이 가져오는 낙인 효과는 상당히 크다. 일단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우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중국인들, 그리고 외국에 나가면 중국인들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 한국인이나 일본인들까지도 마치 코로나19를 가진 병원균인것처럼 거부당하고 차별당한다. 인종차별적인 인식을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시작은 혐오스러운 물질, 더러운 물질과 그 인종을 얽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중국사람들, 동양사람들의 이미지를 혼합시켜 인종차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한에서 시작되지않고 한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폐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물론이요 특히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전례없는 혐오와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한국폐렴'이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대구폐렴'이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건 사대주의 같은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는 현재 미국과 유럽 등 발원지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활개치고 있는 코로나19의 퇴치에도 (당연하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은 택배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날이다. 택배기사님이 이 글을 보실 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그래도 오해받으신 택배 기사님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