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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쎄이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모습

by Major Tom 2020. 4. 11.

내가 일하는 곳에 신입 친구가 한 명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는 아니고 나보다 3-4살 정도 어리기는 하다. 나는 보통 특별히 자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말을 잘 걸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웬걸, 아예 내가 있는 사무실에서 당분간 지내라는 말을 들었단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이 없어서 나는 내 사무실에서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이 사무실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숨막히게 어색한 이 상황. 나는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인사만 하고 공부에 열중했다. 새로온 그 사람은 이런 나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조용히 핸드폰만 하고 있더라. 첫날은 그냥 그렇게 별말 없이 지나갔다. 이 사람하고는 최소 2주간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므로 둘쨋날부터는 말을 좀 걸어보며 친해지자고 마음먹었다. 그 친구의 인상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시도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계기를 먼저 찾아야 했다. 나는 최근에 담배를 끊어서 같이 담배를 피자고는 할 수 없었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할까? 유력했다. 카페를 같이 가자고 할까? 하지만 카페는 밥을 먹고 난 다음에 가야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선택했던 것은 밥을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 셋쨋날에 가서야 겨우 밥을 같이 먹자고 했고 그 뒤로는 순조롭게 풀렸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번 상황이 나에게 주는 충격은 달랐다. 왜냐하면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처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나는 각각의 대사에 대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평소에 항상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행동하기 전에 행동의 결과를 엄청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성격이 주저함을 만들어내는 것 같고 자신감을 앗아가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매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충동적인 행동은 거의 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나 자신이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 사건이 주는 일련의 깨달음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행동의 결과를 생각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 그 상황이 주는 분위기까지 미리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좋은 말로 포장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편하기 위해서, 즉 상당히 이기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생각들이다. 그 동안 댓글 하나 적으면서 걱정하고 누군가 싫어요를 눌르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던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그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매우 민감하게 의식한다. 나의 인식범위는 매우 좁고 인식력은 둔감하지만, 한번 인식하게 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나의 성격이 나쁜 것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일단 세상에 나쁜 성격은 없다. 세상을 원활히 살아가기 위해 불리하거나 유리한 성격은 있을 수 있어도 성격 자체를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으로 나눌 수는 없다. 그 기준을 누가 정할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내 성격이 불리한 성격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주고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면서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성격을 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사실 나도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내 성격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글을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