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하게 지나갔던 오늘 하루. 강원국씨가 쓴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 글에 대한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야심차게 문재인정부의 경제가 정말 어땠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개요를 짜고 글을 작성하려고 했으나 단순히 기준점이 되는 경제 수치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GDP 성장률로 해야하나? 뉴스기사들에는 죄다 요즘 얘기밖에 없으니 자료찾기가 쉽지 않다. 강원국 씨는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서 글쓰는 실력은 정직하게 는다고 하였다. 쓰는만큼, 연습하는만큼, 많이 보는 만큼 글쓰기 실력은 늘게 된다. 글쓰기는 물론 재밌다. 하지만 글쓰기보다 훨씬 재밌는게 많은 이 현대사회에서 매일 글을 적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군더더기 없이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예전보다 단문으로 적게 되는 것도 이 책의 영향이다.
아직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은 부분을 하나 꼽자면, 글을 쓸 때 상대방을 고려해가면서 쓰라는 것이다. 이건 사실 굉장히 당연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것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들만 봐도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목적의 글보다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일방적으로 따라오기를 바라는 글들이 훨씬 더 많다. 상대방을 고려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책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 최대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적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글이라면 나의 쪽으로 한발짝 한발짝 걸어오게 하기 위해 동행해야 한다. 장군이 적을 향해 진격하듯이 상대방을 이끄는 것은 설득하는 글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 상대방과 항상 보조를 맞춰야 한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설득되지 않는다면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글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댓글을 달고 트윗을 하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요즘 시대에는 상대방을 잠시나마 생각할 찰나도 없이 글을 뚝딱 적어서 공개할 수 있다. 특정인에게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한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공간에서 상대를 고려한다는 것은 어쩌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고려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자기 주장만 난무하게 되는 것이 인터넷 자체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어도 설득할 상대방은 순식간에 인터넷의 다른 공간으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운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 불특정 다수와 불특정 다수의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그야말로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인터넷 공간을 매개로 현대에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설득이 이루어지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고려는 더더욱 없다시피 하니, 남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와 혐오 뿐이다. 분노와 혐오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불특성 다수의 알수없는 바닷속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표류하게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하거나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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