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전태일평전'이다. 최근까지 시험 준비만 하느라 세달정도 책을 한권도 못 읽었는데, 바보같이 시험 신청을 놓치는 바람에 여유 시간이 늘었다. 시험 준비는 가볍게 계속하면서 남는 시간에 책을 좀 읽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읽고 있는 책이 바로 '전태일 평전'. 조영래 변호사가 1976년 쓴 책이다. 전태일이 분신자살을 했을 때로부터 5년이 지난 뒤 작성된 책이다.
책에 나와 있는 전태일의 삶은 참으로도 참혹하다. 그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기라도 하는듯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겉모습또한 낡고 바랬다. 찢어질 것 같은 책의 페이지 한장 한장을 넘기다보면 옛날 책에서 자주 보이는 듯한 글씨체와 함께 전태일의 처절한 삶이 드러난다. 물론 아직까지 절반밖에 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두 지나왔다. 단순히 억압적인 노동관계에 맞서 분신자살을 하여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사에 크게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전태일이 입체적으로 나에게 점차 다가오고 있다.
전태일평전에 대한 후기는 다 읽으면 작성할 것이므로 크게 여기서 언급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던 참혹한 일을 통해서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많은 것들에 은혜입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우리 아버지는 몇번 흘리지 않는 눈물을 나에게 보여주신 적이 있는데, 그 중 한번은 아버지를 키워주고 돌보아준 가족들에게 성공해서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자책감에서 흘린 눈물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대학까지 학업을 마친 사람이었고 다른 형제들이 학업을 일찍 마치고 돈을 벌어오기 위해 노동에 뛰어들었던 덕분에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족들의 은혜를 갚지 못한다는 사실은 평생의 짐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아버지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누구에게 은혜를 받으며 자랐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지금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걷는 길에 항상 함께 해주었던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 경찰관, 소방관, 정부, 상인들, 기업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들, 고등학교 때 적었던 소논문을 자세히 첨삭해주시던 대학생분까지 너무나도 많다. 현재 있는 상황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이런 은혜와 도움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성공할 수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적'이라는 키워드가 인간을 다른 어떤 무언가와 다르게 구별해줄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목적이 있고 모든 목적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며, 이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실현(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시작부분). 이에 따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자 특징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나가는 것을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며 이것이 분명 행복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또하나의 결론 하나는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기능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아독존인 사람은 부자가 될 수도 명예를 거머쥘수도 권력을 쟁취할 수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가볍게 일기만 쓰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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