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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쎄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발달장애인 친구

by Major Tom 2020. 5. 24.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났다. 내 인생에서 별로 크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초등학교 3,4학년 때 우리 반에 있었던 발달 장애인 한명 - 지금에야 발달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지 그 때는 몰랐다 -.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다른 친구들의 이름은 별로 기억나지 않아도 그 친구의 이름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속에 남아있다. 내가 그 친구의 도우미였거나 특별히 말을 걸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때 주로 하던 생각은 불쌍하다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발달 장애인들을 일부러 특수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비장애인 중심 학교라고 쓰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에 같이 넣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장애인이라고 특별히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애초에 발달 장애인들은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 수업을 따라갈 수도 없으니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발달 장애인들이 일반 학급에서 겪어야 하는 부적응의 문제는 크다. 당연히 발달장애인들을 괴롭히는 친구들도 반에 몇명씩 있었고 특별히 그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였다. 나는 그 친구가 더럽다고 생각했다. 옷과 가방이 더러웠고 가끔 침을 흘렸는데 그것도 더러웠고 그냥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가 다가오면 마치 괴물이 다가오는 것처럼 두려워했고 자리를 피했다. 그 친구가 건드렸던 모든 것이 오염된다고 생각하여 만졌던 모든 물건, 앉았던 의자, 책상 등에도 일체 다가가지 않았다. 친구를 놀릴때는 종종 친구의 물건을 발달장애인이었던 그 친구의 책상이나 의자에 슥 닦은 다음 오염되었다고 킬킬대는 방식이 주로 선택되었다. 방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적고나서 보니 나는 전혀 방관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그 친구를 괴롭혔던 가해 당사자였던 것이다. 장애인 혐오자였다. 

그랬던 그 친구를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인인 그 친구는 (자폐 성향이 있는 친구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잘 신경쓰지 않는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분과 같이 운동을 가는 중이었다. 그 친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이제서야 궁금해졌다. 다른 발달장애인들처럼 복지관에 다닐까? 아니면 주간 보호시설에 들어갈까? 발달장애인들이 지낼만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 친구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예전에는 그렇게 관심도 없고 오히려 혐오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런걸 궁금해하는 것도 너무 비양심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걱정하고 후회할 거였으면 진작 잘해줬어야지. 

발달장애인들의 삶이 위에서도 말했듯이 한정적인 공간에 머무르기 때문에 비장애인인 사람들은 발달 장애인들이 이 세계에 같이 살고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처럼 학교에서 같은 반에 그런 친구가 있다든가 아니면 나중에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하게 되어 발달장애인들하고 만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 사회는 아직 발달장애인들을 품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특별히 드러나는 갈등이 없으니 장애인들이 잘 대우받고 있구나 싶겠지만 사실 갈등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발달 장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더욱 더 그렇다. 

발달장애인들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자신의 권리를 인지할 수 있을만큼 장애 정도가 낮은 발달장애인들, 사회복지사들, 발달장애인 시민단체들, 그리고 발달장애인들의 법정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다. 그 이외에 사람들을 적지 않은 이유는 애초에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발달 장애인을 만나는 기회를 갖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 장애인 문제는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기도 어렵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기도 힘들다. 존재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관심을 가지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단순히 센터나 복지관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사회속으로 섞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이라면 맞춤 교육과 더불어 일반 학급에서 비장애인 학생들과 섞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하고 성인 발달장애인이라면 동네에서부터 시작하여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 존재 자체를 알리는 것이 발달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한 가장 첫번째 발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섞여 지냈는데 장애인 혐오에 정면으로 노출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건 그것대로 걱정거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존재 자체도 모르면서 갈등이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분명 맞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