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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책 후기

리영희- 대화

by Major Tom 2020. 9. 16.

리영희 - 대화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로 처음 마주했던 리영희라는 분. 그 당시 책이 너무 어려워서인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다 읽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 읽었더라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므로 안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이번에 우연히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주제로 한 서평 쓰기 대회를 발견하고 이번 기회에 이분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이분의 책을 들게 되었다. ‘대화’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다른 책에 비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임헌영씨와 리영희 선생의 대담으로 이루어져있는 이 책은 두께에 비해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리영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기에 딱 좋은데, 그 이유는 이 책에 그의 생애와 사상적 업적, 군사정부 시절 당시 받았던 탄압, 그의 사상 및 생각 등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간접적인 의미로 담겨있다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 자체가 그의 삶에 대한 것이다. 

사실 책 속에 드러난 그의 삶과 말투 등으로 미루어볼때, 리영희라는 사람은 굉장히 엘리트적인 사람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엘리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회계몽을 주도하는 지식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그는 그 시절의 엘리트 코스들을 광복 전까지 밟아나간다. 공부를 평생에 걸쳐 하셨고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자신만의 사상과 생각들을 탄탄하게 구축해나갔다. ‘대화’ 속에 나타난 그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확신에 찬 어투와 그에 못지 않게 탄탄한 논리와 근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람이라면 진리를 가리는 수많은 장애물들 속에서도 결코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낼 것만 같다. 무릇 지식인이라면 자기 생각과 사상에 대한 이정도의 확신은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화’에서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그가 가지는 사상들을 그의 발언을 통해서 부분부분 파악해볼 수 있다. 그가 굉장히 냉철한 현실주의자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특히 그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그는 항상 자기부정의 부정을 통한 긍정, 중국의 루쉰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을 통해 민족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민족적 자신감이나 긍지를 철저히 파괴하는 객관적 진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그저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핑계삼아 우리 민족 자체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민족의 치부를 드러내어 그것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역사를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증진시키고 통합적인 사회를 이뤄야한다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그가 읽었던 책의 종류를 말해주는 구절이다. 해당 목록을 보면 그가 국제관계와 역사의 흐름을 명확히 읽어내겠다는 목적과 의지가 보인다. 또, 세계정세를 파악하려는 것의 가장 목적은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교훈거리를 찾으려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그런 학습의 목적과 원칙을 여기서 명확히 밝히고 있다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았던 리영희 선생. 사회정의를 외치고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가족에게 섬세하지는 못했다. 위대했던 사람들치고 가정 내에서는 따뜻한 아버지였던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회참여와 가정에 집중하는 것을 동시에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사진 3, 사진 4>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그릇된 용어사용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책무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매우 동의하는 부분이다. ‘노동자’라는 용어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인민’이라는 용어 대신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등은 남북 분단관계에서 비롯된 적대적인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북한이 사용하는 용어라는 이유만으로 남한에서는 ‘노동자’, ‘인민’이라는 단어가 제 뜻을 오히려 더 잘 반영하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이라는 단어는 백성이라는 뜻의 ‘민’ 앞에 국가의 ‘국’자를 둠으로써 인간중심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 단어이다. 올바른 개념을 담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진실되고 정확하게 담고 있는 단어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책무라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자화자찬 같아서 쑥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그 시기에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한국 지식인들의 눈동자에 끼어 있던 두터운 장막을 걷어주고 객관적인 세계 현실에 대해서 인식을 달리하게 만든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해. 그러기 위해서 내가 겪어야 했던 많은 고통은 이루 다 말하기 힘들지만 말이오” - '대화' 중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다. 그만큼 확신을 가질만큼의 연구와 분석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자신감이다. 

권력에 굴복하고 거짓을 진실인것마냥 써내야하는 언론인이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낄 무렵 그는 정부와 조선일보의 사표 제안을 수락하고 결국 사표를 냈다. 이후 양계사업, 택시사업 등을 해볼까하다 밑천이 없어 결국 지인(이병주)의 출판사에서 책을 파는 외판원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우연히 만난 후배의 제안에 따라 다시 합동신문사 외신부장으로 가게 되는데, 지식인이 자신의 편안과 권위를 내려놓고 육체노동자로서의 삶을 살며 그 삶에 녹아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으며 차라리 제대로 육체노동자가 될 수 없다면 지식인으로서 한계 내에서 최대한 저항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70,80년대에 노동자로 위장취업하여 그 각성을 이끌어내려는 학생운동 세력들이 많았는데, 과연 그들이 노동자에 대한 진정한 연대의식이나 당사자성을 그 과정을 통해 획득했을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몇번 겨우 노동자 투쟁 관련 시위에 참여한 것만으로, 혹은 농활이라는 이름으로 농사일 몇번 거든 것만으로 그런 연대의식이나 당사자성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타인의 삶에 녹아드는 것은 힘든 것이다. 리영희 선생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과 철저한 ‘자기화’가 필요하다는 것. 타인의 작품을 덕지덕지 인용해서 짜집기식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것으로 소화하여 자신만의 표현으로 내보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내가 글을 작성하거나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새길만한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