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된 책이다. 2000년대 발간된 ‘소유의 종말’ (영문명으로는 The Age of Access)은 영문 제목이 더 책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한글 제목은 ‘소유’가 종말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반면, 영문 제목에서는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는데, 책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소유관계가 접속의 관계로 대체되고 있긴 하지만 소유의 종말 현상보다는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핵심 내용은 다음 단락으로 요약될 수 있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 생활과 사회 생활이 점차 사이버 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 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347-348)”
즉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배타적인 소유를 전제로 한 거래보다는 네트워크 플랫폼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고, 물리적인 물건 뿐만 아니라 문화와 개인의 경험까지도 상품으로 거래된다는 것이다. 20년 전에 한 예측이었으므로 지금 상황과 대비하면서 읽어보며 그러한 예측이 어느정도나 맞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과 2020년도를 비교해볼 때, 공유경제나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포토샵 등에서 나타나는 구독형 상품이 대세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그 예측이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업들이 물리적인 공장이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계 설비들을 대부분 아웃소싱하고 자금 유동성을 늘릴 것이라는 예측도 일견 타당하다. 2000년대 쓰여진 책이라 예시가 오래되어서 그렇지 그 이외의 핵심 내용은 모두 미래를 상당한 정도로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접속자와 비접속자 사이의 양극화
책 내용 중 몇가지 핵심 내용들에 대해 짚어보자면,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접속자와 비접속자 사이의 양극화 문제이다. ‘소유의 시대’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양극화는 문제였지만, ‘접속의 시대’에는 이것이 더 문제가 되는데, 그 이유는 “재산권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협소한 물질의 차원을 다루지만 접속은 체험 자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좀 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323p)”이다. ‘접속의 시대’에서는 물리적인 물질에서 더 나아가 체험과 경험 자체가 상품이 되어 소비자들은 그 체험과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의 권한을 받는 형태로 상품을 구매한다. 접속의 권한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소유를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이나 상품화된 경험(상품화되지 않았더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었을 그런 경험)의 범위 자체가 축소된다는 점에서 더 불리하다.
게다가 네트워크 접속권한을 부여하는 주체는 소수의 몇몇 거대 네트워크 기업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디즈니,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들이 될 것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이 제공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드라마를 즐기며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이러한 플랫폼의 접속 권한을 쥐고 있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대부분 인류의 삶이 치밀하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제공하는 플랫폼 자체에 올라타지 못한 비접속자들의 삶은 접속자들의 삶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양극화는 ‘접속의 시대’에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양극화는 계속해서 심해지고 있다.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기업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부분 중에 하나는, 협소한 의미의 물질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판매하는 상품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산업화 시대에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았지만 이제는 물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경험 자체를 판매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책에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예를 들고 있는데,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신발을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신발이 전달하는 경험 자체를 판매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험을 파는 기업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애플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의 광고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홍보하고 있다. 아이폰의 카메라가 몇 화소나 되는지 제품 자체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의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홍보하고, 앱스토어의 앱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앱으로 만들 수 있는 음악들을 선보인다. 애플의 입장에서 아이폰은 그저 이러한 경험들에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신흥 스마트폰 기업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을 강조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저 제품의 성능이나 제품 자체의 아름다움, 디자인 등을 홍보할 뿐이다. ‘소유의 시대’에는 통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지 모르나 ‘접속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NBA BUBBLE
우연히 오늘 아침에 NBA BUBBLE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프로농구는 그 자체로 인기가 어마어마해서 중계수입으로 얻는 수익만 대략 1조원 이상인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몇달째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즌 경기의 마지막인 포스트시즌까지 취소될 경우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NBA 운영진들과 선수협회에서 추진한 것이 바로 NBA BUBBLE이다. 모든 NBA 선수들과 그 가족들, 기자들, 운영진들 등 관계자들을 모두 하나의 호텔(디즈니 소유 호텔)에 넣어놓고 외부인의 진입을 일체 차단하며 매일매일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철저한 격리를 유지하여 그 공간 안에서 시즌을 계속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7월 초부터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진행방식은 사상 초유의 방식인만큼 이것을 소개하는 기자도 많은 감탄사를 쏟아냈지만, 그의 마지막 멘트는 이 버블의 위대함에 대한 찬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버블 밖에서 생활하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 버블을 구축할 수 있을 만한 엄청난 재력이 없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구축한 NBA BUBBLE, 그 밖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죽어가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접속자와 비접속자 간의 격차에 대해 여실히 보여준다.
20년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함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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