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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장애인 인권

사회복무요원 이야기 #4 동행의 어려움

by Major Tom 2019. 6. 5.

사람 한 명 포기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장애인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10명 가량의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과 함께 하루의 절반을 계속해서 보낸지 어느 새 3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예상할 수 있다. 가령,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내 팔목을 툭툭 치는 분이 한분 계시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의 신호이다. 

 

오늘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한글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특히 읽기와 쓰기가 잘 되지 않는 이용자분에게 한글을 열심히 가르쳐주고자 했다. 아직 ㄱ,ㄴ,ㄷ,ㄹ 쓰기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서 일단 자음을 쓸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소소한 목표였다. 이렇게 직접 옆에서 봐드리는 것이 이번으로 3번째인데, 이용자분이 계속 같은 수준에 머물러있자 답답함이 순간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 답답함이 어떤 답답함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가르쳐도 늘지 않는 허탈감을 상상해보면 대충 비슷할 것 같다. 

 

얼른 수업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수업 시간이 끝난 후 이용자분들이 밥을 먹으러 가시고 정리하는 틈을 타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00씨는 한글 쓰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그래도 ㄱ도 못쓰시던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대답해주셨다. 그 짧은 대화는 순간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점심을 먹는 내내 의외로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내가 이 사람을 어쩌면 포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과 이 답답함을 매일 겪으면서도 항상 침착하고 성실하게 장애인들의 변화와 행복을 이끌어내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화롭게 편견없이 살아가기 힘든 발달 장애인들과 끝까지 함께해주는 곳이 바로 장애인 복지관인데, 그 곳에서 근무하는 나는 오늘 한 명의 사람을 너무 쉽게 포기했던 것 같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며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대충 법조인이 되고, 기회가 된다면 정치에 나서지 않을까 한다고 대답했다. 한 명의 사람과도 동행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회를 이끌어나가겠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