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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짧은후기_박경신「진실유포죄」후기

by Major Tom 2019. 6. 14.

진실유포죄- 박경신

오늘은 「진실유포죄」 라는 책에 대해서 후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저자가 블로그, 언론사 등에 남긴 칼럼들을 모아서 출판한 것인데요, 그래서인지 최신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바뀌지 않은 관계로 여전히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인 '진실 유포죄'. 사실 '진실 유포죄'라는 죄명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예훼손죄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형법 307조 (명예훼손) 조항을 보면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까지 처벌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유포했음에도 도리어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것이죠. 이 조항을 저자는 '진실 유포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②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전체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법령들과 실제 사례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진실 유포죄'도 역시 표현의 자유의 확대에 큰 걸림돌이 되는 조항으로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 명예훼손죄 외에도 모욕죄, 전기통신망법 중 임시조치 조항, SNS 사찰, 수사 용도로 온라인 개인정보 (불필요한 것까지도)를 수집하는 행위 등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몇 가지 지점에 대해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 '표현의 자유'가 소수자들에게 더 중요한 이유 

 개인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불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이유라고 타이틀을 붙이고 싶었으나, 이렇게 달았습니다. 머릿말에서부터 이 책은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더욱 더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수자들은 반대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주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발언기회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쥐고 있거나 다수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굳이 '표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저절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으니까요. (소수자들이 말이 많다는 비꼼을 당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방송사와 관련된 법에서는 '양쪽 의견을 균형있게 보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이것은 때때로 억압적인 조항이 될 수 있습니다. 

 

2. 진실유포죄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형법 307조에는 명예훼손에 관한 법이 있습니다. 진실 유포죄는 307조 1항을 말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는데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진실에도 명예훼손의 책임을 지우게 될 경우 1) (국민들의 알권리 역시 침해되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된다 (가습기 사건, 멜라민, 성범죄자 등) 2) (진실이 보도되지 않으면) 유사 인물이나 유사 업체에 대한 피해가 생긴다. 이 두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명예는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책에서는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이 진실유포죄에 대한 시사점을 명확히 지적해 주는 것 같습니다. 명예는 특정한 지위, 자격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해명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이로써 명예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훼손되는 명예는 명예가 아니라 위선일 뿐입니다. 

 

3. 모욕죄와 혐오죄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명예훼손이 '제3자들이 언사의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판을 저하시키는 것' 이라면 모욕은 '상대를 욕보이는 말로 인해 모멸감을 느낄 경우' 입니다. 이미 조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실제 법을 적용할 때 굉장히 자의적인 성격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조항입니다. 모욕감은 말을 듣는 사람의 '체면'에 비례하고, (법원에서) 체면의 크기 측정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객관적 지표'인 '사회적 지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욕죄가 가진자들의 전유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국가가 개인에 대해서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설령 결과가 무죄가 나온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동기를 충분히 주는 조항입니다. 

 

반면, 이 모욕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로 향했을 경우 이들을 지켜주는 법은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선택하고 있는 제도가 모욕죄가 아닌 '혐오죄(차별금지법)'입니다. '혐오죄'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한가지는 혐오죄가 '혐오스러운 표현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혐오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표명하여 그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표현을 처벌하는 규제입니다. 혐오죄와 모욕죄의 가장 큰 차이는 모욕죄가 모든 모욕적 표현이 처벌 대상인 반면, 혐오죄는 이 중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일으킬, 혹은 실제적인 차별로 이어질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이 있는 표현'만을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소수가 다수에게 하는 혐오표현이 처벌 대상이 아닌 이유는 소수자들의 혐오 표현이 실제적인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4. 자기부죄거부권(묵비권)

 

묵비권은 피고나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헌법적 권리입니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 중 하나죠. 우리나라에서 이 묵비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피고나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도피나 과오의 은폐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실제 증거의 존부와 관계없이 출두 거부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에 해당되어) 곧바로 체포영장의 발부로 이어지곤 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진술을 거부하는 것이 범죄를 인정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임에도 말입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령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 속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부분에는 초점을 잘 맞추었지만 다수와 소수와의 관계,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내용은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민들끼리의 갈등도 커져가고 있는 요즘 이 부분에 대한 조명이 새롭게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익명성을 이용해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을 남발하여 여러가지 안타까운 사례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최근 종종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표현의 자유'는 확대되어야 하고 보장되어야하지만 일정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국가로부터 억압받았던 당연히 주어져야 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그우먼 정선희씨는 한나라당이 최진실씨의 죽음을 핑계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고 할 때 "인터넷은 호수같은 것이다. 새와 꽃과 나비만 살 수 없지 않느냐. 미생물도 살아야하고"라며 말린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그 미생물이 너무 과도하게 번식하여 호수 전체를 물들이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