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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짧은후기_일본회의의 정체 (아오키 오사무)

by Major Tom 2019. 9. 14.

일본이 대한민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지 2주 정도 된 것 같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이런 조치를 대법원의 강제징용에 관한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규정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했다. 물론 연장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만 아베정부는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방침에 대해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광복절에 '주진장'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일본회의라는 조직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우파 계열의 단체의 중심에 서 있는 일본회의는 현재 아베 내각의 각료 19명 중 15명이 속해있는 조직이다. 자연스럽게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마침 전자책 버전으로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일본회의의 정체》의 첫 장을 넘겼다. 

 

 

일본회의란 무엇인가? 

일본회의는 1997년 정계, 재계, 학계 등 각계 우파 대표자들의 모임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생장의 집(일본의 종교단체)’을 비롯한 일본 종교인과 문화인의 우파 모임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즉 “전후 일본의 우파계 정치가, 학자 문화인, 경제인, 그리고 신자와 자금이 풍부한 종교단체가 대동단결”한 것이다. 

일본 현 아베정권의 핵심 인사들 중 대부분이 일본회의에 속해있다. 일본회의 발족(1997년)에 호응하여 국회 내 조직으로 탄생한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국회의원은 중참 양원을 합하여 모두 281명 가량 되며, 아베 각료 20명 중 13명(65%)이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회원이다. 또한 아베 총리 관저 핵심 스태프 5명 중 4명이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일원이다. 단순한 통계수치만 보더라도 일본회의와 관련된 정치인들이 현재 권력의 중심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일본회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는 그 설립 취지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일본회의가 내세우는 이념과 정책에 공명하고 그에 호응하여 일본회의의 이념과 정책을 현실정치의 장에서 실현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즉 "일본 회의는 단순한 정치단체가 아니었고, 물론 순수한 시민단체도 아니었으며,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단체임을 처음부터 선언"했다. 

저자는 일본회의가 과거 “원호법제화 운동이나 건국기념일의 공휴일 지정, ‘애국적’인 역사교과서의 편찬, 국기국가법의 제정, 황실숭배 의식의 함향, ‘헌법개정의 전초전’으로서의 교육기본법 제정 등의 우파 조직의 모든 운동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니지만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고 하며 일본 회의의 영향력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스스로 자금 상황을 밝히지 않고 있는 일본회의는 사실상 “신사본청을 필두로 하는 신사계의 두터운 후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금이 풍부한 신사본청이나 메이지 신궁 등의 종교 단체가 다양한 형태로 일본 회의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일본회의는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책에 대해 집회나 서명운동 등 아래에서부터 이루어지는 ‘풀뿌리운동’을 적극 추진하여 정권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일본회의를 비롯한 일본 우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일본회의가 일본 우파의 중심적인 조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 회의를 비롯한 일본 우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1997년 당시 일본회의가 결성되면서 발표한 선언문은 일본회의의 기본 이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놀랄 만한 경제적 번영의 그늘에서 일찍이 우리 선조가 키우고 계승한 전통문화는 경시되었고, 빛나는 역사는 잊히고 오욕되었으며, 국가를 지키고 사회공공에 힘쓰던 기개는 사라졌다. 그 결과 오직 개인의 보신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여 바야흐로 국가를 무너뜨리고 있다.” 


선언문으로 미루어볼 때 일본회의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만들어진 ‘전통’과 ‘국가’를 중시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을 찬양하고 ‘빛나는 역사’, ‘전통 문화’, ‘국가를 지키는 기개’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선언문을 보충해줄 수 있는 내용은 일본회의의 ‘기본 운동 방침’(설립대회에서 발표)에서 볼 수 있다. 이 ‘기본 운동 방침’에서 일본회의는 “1. 황실에 대한 존숭 2. 헌법의 개정 3. 국방의 충실 4. 애국 교육의 추진 5. 전통적인 가족관의 중시”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회의의 사무총장이자 핵심인 가바시마 유조가 과거에 쓴 글(1990년, <조국과 청년>)을에는 황실의 존숭과 관련된 일본회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의 일본은 제정일치라는 국가철학을 정교분리 사상에 따라 부정하는 풍조가 있다. 유럽의 권력정치와 종교전쟁에서 비롯된 타협의 산물인 정교분리 사상을 토대로, 제정일치 국가철학을 부정하는 것은 (중략) 실로 역사를 모독하는 어리석은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교분리 사상과 제정일치 국가철학 간의 다툼도 종교 전쟁의 한 가지 형태다. 인류는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싸움을 거쳐 수 많은 제사 국가를 멸망시켰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전후 다이조사이를 포함한 궁중 제사에 관한 다양한 싸움의 반복은 종교전쟁에서의 일진일퇴로 각오해야 한다. 그 안에서 제사 국가의 특징을 제시하고 일본 국가는 물론,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구원하는 철학이라는 사실을 내외에 명시하는 것이야말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정교분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제정일치를 주장하는 이 글은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진다. 옛날에 쓴 글이고 가바시마 유조라는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황실의 영광을 드높이려는 일본회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 우파 운동의 기저에 ‘종교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러한 ‘종교심’이 우파 운동을 끈질기고 성실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헌법의 개정은 일본회의와 일본의 우파가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가바시마 유조가 예전에 쓴 글(1993년, <조국과 청년>) 중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글 역시 흥미로웠다. 


“일본의 정치사는 천황이 문신, 무사, 정치가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전통이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이므로, 서양의 정치사와는 완전 다른 역사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시스템에서 주권은 어느 쪽에 있는가, 이에 관해 서양적인 양자택일론을 그대로 도입하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해체된다. 현행 헌법의 국민주권 사상은 이 점에서 부정되어야 한다.” 


개헌과 관련하여 일본 우파의 생각은 하나로 일치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개헌을 원하는 무리들도 있지만 현행 헌법이 자주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연합군의 영향력 하에 만들어진 전후 헌법) 철폐하고 전쟁 이전의 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개헌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바시마 유조가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천황이 위임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애국 교육과 관련해서, 일본 우파 세력들이 교과서에 많은 손을 댄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일본회의는 애국 교육의 추진을 위해, 그리고 ‘헌법 개정의 전초전’으로서 헌법 개정에 동의하는 시민들을 늘리기 위해 교육기본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결국 2010년에 아베 정권은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이뤄내게 된다. 개정된 교육기본법 전문에는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육성해 온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포함되는 등 국가와 전통, 공공 정신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기본법과 관련된 일본회의의 생각은 전 최고재판소 장관이자 당시 일본회의의 회장이었던 미요시 도루의 축사(2005년 4월 29일, 일본협의회 결성식전 축사)에서 읽을 수 있다. 


전통과 문화의 존중, 애국심의 함양, 도덕성의 육성을 담은 기본법을 제정하고, 그를 토대로 착실하게 교육해 ‘일본에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을 늘리지 않으면 우리 일본의 역사, 문화, 전통에 기초한 헌법 개정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일본회의였던 것이다. 

 

일본회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일본회의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서 저자는 일본회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일본회의를 아베 정권을 좌지우지 하거나 지배하는 조직으로 보는 것 보다는 오히려 양자가 공감하고 공명하면서 ‘전후 체제의 타파’라는 공통목표를 향해 나아가 결과적으로 일본회의의 존재가 거대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즉 ‘위로부터’의 권력 행사를 통해 ‘전후 체제를 타파’하려고 호령하는 아베 정권과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운동’으로 ‘전후체제를 타파’하고자 집요하게 운동을 지속해 온 일본회의에 모인 사람들이, 전후 처음으로 자전거 앞뒤 바퀴처럼 서로 작용하면서 오랜 비원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회의가 정치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보다는 정권과 호응하여 아래에서의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직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의견이다. 이 외에도 원리적이고 사상적인 기초를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에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도 일리가 있다. 

분명 일본회의는 갑자기 나타난 조직이 아니다. 그저 우파적인 주장과 운동을 하며 비슷한 운동을 오랫동안 반복해 왔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우파 조직이 특별히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좌파 조직들이 냉전체제의 붕괴와 사회당 및 노조의 쇠퇴로 목소리를 잃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 한국과 중국의 경제성장과 일본의 경기 침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의 확대 등이 우파 조직의 기세를 더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우파 조직의 성장과 더불어 일본에는 이전보다 일본이 타국보다 우수한 ‘특별한 나라’라는 인상을 주는 언론기사, 뉴스, 텔레비전 프로그램, 서적 등이 많아졌다고 한다. 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불관용적인 언론인, 정치인, 학자 등도 많아졌다고 한다. 일본회의는 어쩌면 현 상황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일본사회가 ‘병’에 걸려 있고 거기에 호응해 나타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쩌면 원인과 결과를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

상당히 분석적인 책이다.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어서 그런지 주관적인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여러 인터뷰와 자료들을 엮어 일본회의를 객관적으로 비춰보려는 노력이 책 전반적에 걸쳐 드러났다. 일본회의가 일본정치를 좌우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보면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일본회의에게 전부 넘기려는 노력은 오히려 일본 우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할 수 있다. 일본회의와 더불어 일본 우파의 기본적인 생각을 알아보기에는 굉장히 좋은 책이다.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