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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자기의 이유/자유- 타인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조정래 <태백산맥> 中/신영복 <담론> 中)

by Major Tom 2019. 11. 15.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1월 초순으로 접어들면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까마귀떼가 하늘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사람들은 그 검은 새떼가 갈숲으로 내려앉는 것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저눔에 것덜이 필시 피냄새럴 맡은 모냥이구만.” “금메 말이시, 본시 시체 뜯어묵고 사는 저승새라고 안 허등가” “저눔의 까마구는 까치허고는 달리 흉조는 흉조여 …””

전라도 사투리를 정말 현장감 있게 담아내고 있는 조정래 선생님의 뛰어난 글솜씨도 볼거리 중 하나이지만 오늘 주목할 것은 까마귀가 부정적 의미를 담은 새라고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태백산맥> 중 이 문장이 나오는 챕터에서는 산속에 숨어있던 좌익 세력들이 동무를 말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읍내를 잠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읍내의 토벌대와 경찰 세력과 총격이 있게 되죠. 조정래 선생님은 장 초반에 까마귀 떼를 등장시키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면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날 것이라는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했을 것입니다. 까마귀 떼의 등장으로 독자들은 긴장감 있는 상태에서 무슨일이 일어날 지 궁금해하며 책 페이지를 하나 하나 넘기게 되겠죠. 물론 주관적인 부분입니다만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본인이 “저승새”라고 불리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만약 까마귀와 말을 할 수 있다면 까마귀는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죽고 죽이는 건 인간들인데 왜 자기한테 화풀이하냐고 항변하겠죠. 사실 까마귀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까마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힌 것은 인간들이고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까마귀는 그저 자기만의 이유를 찾아 생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체에 까마귀가 몰려드는 것도 먹이를 구하고 생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도 <담론>의 마지막 장에서 독버섯 일화를 소개하며 같은 말을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독버섯이라고 지목받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 독버섯에게 친구 버섯은 독버섯을 위로하고자 하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였습니다…’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독버섯 이야기를 통해 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자기의 이유’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며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삶을 계속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유행과 트렌드, 그리고 과도한 경쟁 속에서 이리 저리 쫓아가느라 바쁜 우리의 삶. 우리는 까마귀와 독버섯 이야기에서 그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은 결코 행복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비교 대상자를 넘어서면 또 다른 대상자가 나타나고 그 사람을 넘어서면 또 다른 대상자가 나타나는 무한의 경쟁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하는 삶의 우승자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단 한 명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아야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갖는다는 것은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 <담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