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있다. <태백산맥> 3권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민영 선생이 김범우와 손승호에게 광복 이후 한반도의 행보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온 구절이다.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진단하자면, 민족을 위한 이념이냐, 이념을 위한 민족이냐, 두 갈래 길일 것일세. 전자를 택하는 경우 민족은 하나가 되고 선택할 이념도 다양해지고, 후자를 택하는 경우 민족은 분열되고 이념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마는거지. 일단 우리는 후자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네”
- 태백산맥 3권, p249
정말 뼈에 와닿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광복 후 혼란한 시절 속에서 민족을 위해 이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축으로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민족을 축으로 했다면 이념은 선택사항이 되기 때문에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뿐만이 아니라 여러 이념들을 적절히 섞어 우리 민족에 이익이 되게끔 설계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념을 축으로 갈라지게 된 이후 남한과 북한 각각에서는 서로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고 아예 다른 사람, 심하게는 적으로 취급을 하는 세상을 우리는 선택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가 판치며 정계과 시민들을 갈라놓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런 비참한 상황은 광복 이후의 바로 그 선택, 백범의 길이 아닌 분단의 길로 걸어가자는 바로 그 선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미 우리는 민족으로 다시 뭉치기에는 어려워졌다. 특히 민족이라는 관념도 다문화 사회 앞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상황 속에서 남과 북을 하나로 엮어 줄 정신적인 유대감은 어디서 다시 찾아야 할 것인가?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쌓여 한반도의 위기를 통일이 아니면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할때 즈음 통일에 대한 생각은 다시 불타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남과 북이 하나로 뭉치는 이유는 분명 민족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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