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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재난지원금

by Major Tom 2020. 6. 15.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에 대해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기본적으로 배분의 문제이다. 그 배분은 비례적 배분과 산술적 배분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비례적 배분은 그 사람의 가치에 걸맞게 배분하는 것이며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배분량은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산술적 배분은 말그대로 똑같이 나누는 것인데, 부자가 사람을 때리거나 거지가 사람을 때리거나 상관없이 폭력에 대해서는 동일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례적이고 산술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매우 겉핥기식으로 읽는 중이지만 지금은 책이 잘 읽히지도 않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을 이용해 재난지원금이 정의로운 것이었는지 한번 사안포섭을 해보려고 한다. 먼저 재난지원금이 비례적인 배분인지 산술적인 배분인지부터 따져 보도록 하자. 재난지원금이 비례적인 배분이라면 특정 조건에 비례하여 지원금이 비례적으로 배분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똑같이 100만원씩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재난지원금 배분은 분명 산술적인 배분이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이 산술적으로 잘 배분되어 정의로운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재난지원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돈을 나누어준 것이 아니다. 그 돈은 세대주에게만 주어졌고, 세대주가 구성원들에게 임의로 배분하지 않거나 세대주랑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재난지원금 지급률이 100%가 아니라 94%정도였다는 것만 보더라도 6%의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정보를 접하기 힘든 계층이거나 장애로 인해 제대로 신청할 수 없는 경우도 배분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난지원금은 누군가에게는 온전히 지급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반 혹은 그 이하이거나 아예 지급되지 못하였다. 국민이라는 모두가 똑같은 동등한 자격 속에서 똑같이 나누어져야 하는 것임에도 그렇지 못했으니 재난지원금 배분은 산술적으로 똑같이 배분되지 못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이번 재난지원금 배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의하면 정의롭지 못한 것이 된다. 

사실 국가 입장에서는 모든 세대주를 상대로 동등하게 배분하였으므로 산술적으로 평등하게 배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청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인 측면에서는 평등하게 배분되었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되었다. 시작은 정의로웠지만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