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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책 후기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공부, 신영복 <담론>

by Major Tom 2019. 11. 16.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공부, 신영복 <담론>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담론>을 꼭 읽어봐야 한다고 하셨지만 왜 읽어봐야 하는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처음 추천받았을 때는 아무래도 별 관심이 없어서 나중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메모장에 책 이름 하나 옮겨 적어 두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군 복무를 하느라 시간이 참 많기 때문에 그 동안 안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담론>은 그 중에 하나입니다. 

<담론>은 신영복 선생님께서 직접 쓴 책이라기보다는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며 진행했던 ‘인문학 강좌’의 강의록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책처럼 거의 완전합니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이후 20년 옥살이를 하시다가 사면으로 다시 사회에 나오신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에 있는 동안 수 많은 책을 읽고 본인의 생각을 끊임없이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말에는 두서가 있고 논리는 명확하며 명료한 단어를 가지고 내용을 전개해갑니다. 책 곳곳에는 우리 사회의 허점들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들을 담은 문장들이 많습니다. <담론>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입니다. 동양 고전들을 보면서 세계를 인식하는 틀을 소개하고, 신영복 선생님이 만난 가지각색의 인간상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주시며 인간에 대해 공부합니다. 

<담론>의 몇몇 문장들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입니다. 더구나 장을 이루지 못함은 분명합니다.” - <담론> 110p.

<맹자>의 ‘곡속장’에서는 왕이 제물로 바쳐지는 소의 불쌍한 눈을 보고 소 대신 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다는 에피소드(이양역지)가 나옵니다. 맹자는 여기서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게 여기는 이유가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담론>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만남’은 많지만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끌어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보다 ‘상품’ 혹은 ‘노동력’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흔히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과 깊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지속적이지 않고 얕은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 채 ‘점’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전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짚어냈던 부분이었습니다.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 <담론> 239p.

신영복 선생님은 ‘관계’를 상당히 중시했습니다. 서양에서는 개인이 중심이라면 동양에서는 관계가 중심입니다. 근대화의 시작의 개인의 발견이었다면 탈근대의 시작은 개인에서 벗어나 관계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기술을 배웠으나 사실 그것보다 본질적인 것은 인간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부분에서 나온 것입니다. 옆 사람만큼의 변화만큼만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 크게 와 닿습니다. 나의 인간관계를 통해 자기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계속 강조하는 신영복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꽃’입니다. 그 속에 시대가 있고 사회가 있고 기쁨과 아픔이 있습니다.” - <담론> 251p.

결국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은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사람 속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사회와 인간관계, 그리고 슬픔과 기쁨의 감정들이 모두 녹아져 있습니다. 시대와 사회와 감정을 모두 담고 있는 한 명의 인간을 우리는 결코 하찮게 대할 수 없으며 단순히 ‘상품’이나 ‘노동력’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누구나 꽃’ 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명의 사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이 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이 되게 합니다. 사람을 관객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 맺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 관계없이 인식 없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 <담론> 278p. 

객관적인 언론이란 말이 무색해지게하는 부분입니다.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이 된다는 말, 단순히 단어를 뒤집는 행위를 통해 객관의 치명적인 단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신영복 선생님은 ‘관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사실을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알기는 힘듭니다.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참된 인식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대비는 동양적 인식틀입니다. 유일한 것은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를 하나의 전체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5행이라는 5개의 섹터로 나누어서 거기에 공통되는 속성을 부여해서 응대관계로 인식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녀, 주야, 대소, 장단, 음양 등 상징체계로 대비하는 인식틀이 친숙하고 쉽습니다. 그리고 이 대비 방식은 동양의 전통적 인식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분이 간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의 강의가 중심에 놓고 있는 ‘관계론’의 가장 단순한 형태입니다.” - <담론> 345p. 

동양적 인식틀을 대비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책 전반적으로도 대비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내용을 전개해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생각해보면 대비는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늘날에는 이 ‘대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대상만 있을 때에 비해 대비는 그 대상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대비되는 두 대상 사이의 것을 생략해버립니다. 예를 들면 남녀라는 대비체계는 남과 여 사이에 있는 무수히많은 성 정체성들을 외면하게 되어 버립니다. 이제는 선을 모아서 면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 많은 대비 구조를 이용해서 양안의 스펙트럼을 채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복수의 대비 속에서 우리는 한층 더 진실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며 관계를 더 깊게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담론>에는 좋은 구절들이 많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