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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책 후기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by Major Tom 2022. 11. 22.


평소에도 ‘블루리본’을 단 음식점, TV에 나온 음식점이라면 사족을 못쓰곤 했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다는 <금각사>의 저자 미시마 유키오의 소개글은 이 책을 서슴없이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분명 좋은 책이니까 후보에도 3번이나 올랐겠지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번 읽고 나서야 겨우 의미를 음미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추남이자 말더듬이인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사에 방화를 저지르기까지의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미조구치가 어릴 적에 결핵으로 사망한 아버지는 사망하기 직전에 미조구치를 녹원사의 주지에게 위탁하고, 미조구치는 그 곳에서 도제로서 절의 잡일을 맡고 주지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합니다. 녹원사는 바로 금각사가 있던 곳이었고 태평양 전쟁,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금각사에 미조구치는 금각에게서 남다른 애정과 일체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금각은 미조구치가 여성과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마다, 즉 ’인생‘을 살려고 할 때마다 갑자기 정신 속에 나타나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수 차례 그러한 것들이 반복되고 결국 미조구치는 금각을 불태우리라는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깁니다.

금각은 미조구치가 평생을 일체감과 애정을 느낀 상징적인 존재이고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이 그 완전함을 유지하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러한 금각을 미조구치가 불태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삶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인 믿음, 공리, 의문의 여지 없는 전제들을 완전히 척결해버리겠다는 매우 과감하고도 주체적인 결심입니다. 문득 나의 인생에 ‘금각’과 같은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믿음, 나에 대한 확신, 절대 무너져서는 안되는 황금과도 같은 가치관이 무엇일지요.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금각’이 불타버렸을 때, 미조구치는 함께 죽으려고 했지만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삶의 근간이 되었던, 절대 무너지면 안될 것 같은 그러한 존재가 무너진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생이 마감하는 것에 불과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약간 주제넘은 해석을 해봅니다.

미조구치의 말더듬이 증상은 미조구치가 방화 전까지는 적극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던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말을 통해 행동하려고 해도 첫마디를 더듬던 찰나를 주변 상황은 기다려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수동성은 방화를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도 계속됩니다. 어떻게든 주지가 자신의 잘못을 크게 지적하고 혼내 방화를 하게 되는 계기를 외부로부터 찾으려고하지만 주지 스님은 미조구치의 희망과 다르게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결국 미조구치는 행동의 계기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각을 태우는 것이 행동을 통해 주체로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된다고 본다면, 결국 이러한 행위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금각사>를 탐미주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금각‘이 미가 아니라 개인의 트라우마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조구치는 어머니를 ’혐오‘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어렸을 적 직접 목격했던 어머니의 불륜 현장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송곳에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금각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잡아 이후 미조구치가 여성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미조구치를 막아섭니다. 금각을 불태우기로 결심한 시점 이후, 미조구치는 유곽에서 관계를 맺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에 힘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책이 담고 있는 철학에 비해 느낀 것이 참으로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다시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오랜만에 두 번 읽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번째 읽을 때, 책이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처음 읽을 때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치 금각이 주변의 변화에 따라, 미조구치의 심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변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번 더 읽는다면 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러한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