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회과학 관련된 책만 읽다가 오랜만에 머리도 식힐 겸 가벼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법조인이 꿈인 만큼 변호사의 삶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 같아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을 하나 골랐다. 가볍게 골랐지만 내용은 쉽지 않았던 이 책의 이름은 바로 '돈명이 할아버지'이다. 나에게는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이 할아버지의 명성은 대단하다. 70,80년대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 대한민국의 1세대 인권변호사였던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일생을 다룬 내용보다는 사실 변호를 맡은 사건들에 대한 설명과 시대 상황에 대한 소개가 더 많다. 이돈명 변호사의 전기이지만 시대상황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은 그의 삶과 시대가 분리될 수 없을만큼 연관성이 많이 때문일 것이다. 70,80년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기의 주요 인권 관련 재판에 이돈명 변호사는 대부분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 인권 변호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변호사도 그의 변호가 재판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당시 인권변호사의 역할이란 법률적 조언을 하거나 형량을 낮춰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인권변호사의 개입으로 의뢰인이 중죄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권변호사들의 존재는 빨갱이로 몰려 어둠 속에서 혼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없는 위안이었다. 인권변호사들은 그들의 싸움이 결코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니며, 설사 사형을 언도받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확신시켜주는 동지이자 격려자였던 것이다"
- 돈명이 할아버지 中
인권 변호사의 존재 이유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구절인 것 같다. 이 당시 피해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죄로 석방되는 것보다 정신적인 위로와 함께하고있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돈명 변호사는 그 점에 있어서 탁월했다. 이돈명 변호사 전기 내내 피해자들이 이 변호사에게 편안함을 느꼈는지 자주 언급된다. 변호사의 진짜 목적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보게 만드는 부분이다.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정착된 오늘날에도 분명 인권변호사는 필요한 존재이다. 사회 이곳저곳에서 인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고충을 이해하고 어려움에 공감하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함께 애써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멋진 인권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분명 어려운 문제다. 경제적인 문제나 기타 현실적인 문제들이 인권 변호사가 되는 길을 종종 가로막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돈명 변호사가 더욱 더 대단하다. 경제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바로 그 시기에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저항하여 인권이 침해당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것, 이것이 그가 여전히 존경받는 변호사로 남는 사람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전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전신인 정법회를 만든 사람 중 하나가 이돈명 변호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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