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르게 된 인권 페스티벌, 인권 영화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우연히 그 시간대에 상영하는 인권 영화 하나까지 볼 수 있었다.
제목은 바로 <어른이 되면>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혜정이는 13살 때 가족의 곁을 떠나 시설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녀의 둘째 언니 혜영은 18년동안 동생과 떨어져 지내다가 최근에서야 같이 살겠다는 결정을 하고 혜정이를 시설에서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
인권 영화라는 것을 그동안 대충 몇번 본적 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인상깊었던 특징 하나는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영화의 사운드를 수화로 들려주는 사람이 한명 있다는 것.
사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통역은 생각보다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놀랍지는 않았다.
진짜 놀라웠던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영화의 장면 장면을 묘사해주는 해설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영화의 기본 나레이션 외에 다른 목소리가 영화의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혜정', 이런 식이다.
계속해서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의외로 그것이 영화의 몰입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다큐멘터리같은 종류의 영화여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영화가 많아진다면 저시력자나 장면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곧바로 최근에 본 영화 '신세계'에서 그런 나레이션이 나온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아직까지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영화 속 혜영이의 생각이 와닿는다.
"두 개의 시간을 살고 있는 혜정이의 언니, 돌본다는 건 꼭 다른 한 명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되어야 할까"
"(혜정이를 시설로 보낸 당시) 그 때의 엄마에게 24명의 친구들이 있었다면 혜정이는 계속 우리랑 같이 살고 있지 않았을까?"
돌봄이라는 것이 그 가족에게만, 보호자에게만 한정되어야 하는 책임인 것인가?
돌봄이라는 것을 개인이 맡아서 하는 것은 확실히 잔인한 일이다. 개인이 맡아서 할 경우 장애인의 인권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을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돌봄을 맡는 그 개인의 삶이 상당 부분 희생되어야 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혼자 생활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이나 신체장애인들의 경우 보호자가 1분 1초 항상 붙어 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가 함께, 공동체가 함께 돌봄이라는 것을 분담한다면 그것이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인권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회가 돌본다는 것이 특별한 일일까? 아니다. 사회가 돌봄을 행한다는 것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혜정이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도와주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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