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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는 이야기들

#짧은후기-아메리카의 민주주의(알렉시 드 토크빌) 1권

by Major Tom 2019. 10. 10.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 #알렉시 드 토크빌 

서울도서관에서 빌렸다고 한다.

정치학의 명저로 알려져 있는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사실 내가 읽은 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1권이다.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좀 더 경험적인 비교로 이루어져 있고 2권은 민주주의 이론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본인의 서문에 의하면 1권은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으나, 2권은 오히려 반발을 많이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2권을 왜 아직 읽지 못했느냐. 그것은 1권의 두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무려 700페이지 가량의 두께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름에서도 볼수있는 것처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토크빌이 이 책을 쓴 것이 1830년대이므로 현재 미국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큰 틀은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으므로 현재까지도 상당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토크빌은 책 곳곳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짚어내며 특정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하는데, 1830년대 미국 초기 민주주의의 결함들이 과연 오늘날까지도 문제가 되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이 책의 묘미라고 말할 수 있다. 

항상 내용 요약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 내용이 방대한 만큼 간략하게 요약해내기가 분명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간단하게 인상깊었던 대목만 짚고 넘어가보자. 

토크빌이 생각하기에 민주주의의 종속을 위협하는 위험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입법부가 선거구민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모든 다른 통치권력이 입법부에 집중되는 것.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시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 다수에 의한 통치는 오류를 많이 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학계의 입장이었나보다. 토크빌은 인민 다수에 의한 통치가 확실히 오류가 많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물론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오류가 많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오류를 수정하는 능력 또한 빠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잦은 선거로 인해 통치의 지속성 역시 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통치하는 자들이 일시적이고 변동성이 높은 인민 다수의 의견을 정제하지 않은채로 무분별하게 따라가다가는 다수의 압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민의 힘이 커지면서 입법부의 힘 또한 자연스럽게 커지는데 이런 입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행정부나 사법부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이 역시 다수의 압제로 이어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수의 압제가 문제인 이유는 다수라는 것이 그 자체로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다수의 권력은 다수가 아닌 자들이 정권을 교체할 가능성을 줄이고 타협과 협상보다는 물리력의 동원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다수의 압제의 경우 이에 맞설 보장책이 거의 없다. 다수가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없다고 보았다(1830년의 미국을 프랑스와 비교하며 미국이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매우 빈약하다는 지적을 했다.) 토크빌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뼈있는 비판을 한다. 

 

“다수의 권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인 반면, 그것이 올바르게 행사되는 것은 우연인 것이다.” 

 

다수의 권력이 강력한 것은 변함없으나 그것이 올바르게 가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토크빌이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쓰인다면 다른 어떤 제도보다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민중의 거친 의견이 아니라 귀족주의적으로 정화된 의견이 더 쓸모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직접 투표가 아닌 선거인단을 이용한 선출이나 주 의회에서 선출되는 상원과 같은 제도들, 그리고 사법부나 행정부 같은 요소들이 다수의 의한 압제를 방지할 수 있는 해결책 정도로 본 것 같다. 

엘리트주의적이고 귀족주의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대립 구도는 고대 서양 철학에서부터 오늘날까지도 항상 대립하는 전통적인 구도이다. 교육을 받은 계층이 한층 늘어나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온라인 상에서의 사회 참여 및 활동이 활발해진 오늘날 여전히 민중 다수의 의견은 견제받아야 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전히 견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의견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다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두 정당의 지지층은 서로의 의견을 듣고 협상하고 타협하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대적하기 일수이다. 지지층 뿐만이 아니라 정당 자체의 싸움도 잦다. 선거철이 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백이 온다. 흔히 ‘레임덕’이라고 일컬어지는 권력 공백기가 온다. 토크빌 역시 이 선거 기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위기(권력의 공백)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주 상시적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 상황에서 본인들이 다수라고 앞으로 나서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정당들은 다수의 의견을 독점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의견이 들어갈 통로는 없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소수자의 의견이 들어갈 여유가 없다. 200여년 전의 토크빌의 지적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 하다. 군주정과 귀족정이 완전히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이제 남은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수의 압제밖에 없는 듯 하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이유를 미국의 침략받지 않는 평온하고 드넓은 자연환경,  뛰어난 법제, 그리고 사람들의 습속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중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습속이다. 아무리 뛰어난 법제가 있고 환경이 좋아도 습속이 적당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성공적일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습속은 민주주의에 적당한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인 것 같다. 

 

2권을 읽어보고 싶으나 아직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