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존 리치스
그리스도교가 뜻하는 것,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나는 맨날 헷갈리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불교를 딱히 진실하게 믿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겪은 교회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가까운 곳으로 봉고차 한 대가 들어왔다.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내리더니 우리에게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이 없냐고 했다. 그 때 아저씨가 준 아이스크림은 폴라포.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기억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이스크림에 현혹된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봉고차에 탑승했고 그 봉고차는 참 다행스럽게도(?) 교회로 향했다.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에 교회에 도착해 설교를 듣고 있는 와중에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납치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 때의 영향인지 난 교회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고 폴라포를 내 돈 주고 사먹은 기억도 없다.
그렇지만 서양 문화의 근본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 지구의 1/4가 믿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하고서는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성경을 읽어보려는 나의 시도는 성경 특유의 문체 앞에서 항상 막히고 말았다. 이 책은 제목이 ‘성서’ 이지만 성서 내용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성서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저자가 책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은 성서가 단일한 책이 아니며 성서 자체의 수많은 비유와 은유, 그리고 정경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수 많은 성서 책들 중) 선택적 취사로 인해 해석이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유대민족에 관한 역사와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구약, 그리고 예수가 탄생한 후 이야기들과 하나님의 계시를 적어놓은 신약으로 크게 이루어져 있는 ‘성서’는 단일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복음서, 예언서, 율법 등을 합쳐서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비그리스도교에게는 이 부분부터 새롭다.
구약, 신약 모두 여러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회와 그리스도교의 여러 분파들은 책을 정경화하고 필요하고 알맞은 책들을 선택취사해 왔다. 애초에 글로 처음 쓰여지기 시작할 때부터 글로 적는 것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전과정에서 변형이 있었을 것이고 공동체와 시대의 정신, 그리고 해석자의 생각에 따라 특정 책들은 선택당하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역사의 뒷편으로 묻혀왔다.
성서가 규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형성적인 성격을 가지는지에 대한 논란은 성서에 관한 흔한 논란이다. 규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서가 특정 공동체의 규범이 된다는 것이고, 형성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성서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신이나 공동체의 기초가 되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 성격은 분리될 수 없는 구조인 것 같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논란처럼 어떤 것의 선후를 먼저 특정할 수도 없다. 확실한 것은 성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회의 규범과 기본 사상들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성서는 인간 행동의 이데올로기적인 기초를 제공해왔다. 애초에 모순되는 문장들도 많고 비유적이고 모호한 어휘들로 쓰여진 성서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토양이 된다.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를 침략할 때도, 아프리카를 침략할 때도 성서의 특정 구절들이 이용되었다. 해석의 다양성을 이용해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던 성서는 정반대로 해방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종교 분파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성서의 부분을 이용해 인종차별에 반대했다. 또 가부장적인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성서 구절에 대항해 성평등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해석들이 나오기도 한다. 요컨데 성서는 여전히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서 해석의 주체는 특정 세력이 아닌 성서를 읽는 독자이다. 성서를 읽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혼자 성서를 읽지 않는다. 어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성서를 읽으면서 성서 해석에 관한 기본 틀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독자는 거기에 그치지 말고 성서를 해석하는 여러가지 의견들을 들어보고 이해하면서 비판적으로 성서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성서의 다양한 해석은 오히려 성서를 살아있고 활기있게 만들며, 성서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는 현재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 대해 간략하게 이해가 가능하면서도 적절한 깊이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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