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에게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에 반대해서 일어났던 시위가 지금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와 ‘송환법’의 완전 폐지, 그리고 행정장관 직선제를 내세우며 지속되고 있다. 특히 홍콩 시위자들은 경찰의 탄압과 중국의 위협에 맞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검은 복면을 착용하고 시위를 진행해 왔다. 이에 대해 캐리 람 행정장관은 10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5일 0시부터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을 이용해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복면금지법(Anti-Mask Law)’은 모든 공공집회나 시위에서 마스크, 가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으로, 이를 위반할 시 최고 1년 징역 혹은 약 2만 5000홍콩달러(약 3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 법은 공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일 때 행정장관이 입법회의 승인 없이 법령 시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긴급법에 의해 바로 시행되었고 홍콩 시위자들은 이에 대해 격하게 반대하며 마스크 시위를 이어 나가고 있다.
홍콩 정부와 중국 측 언론 매체들은 시위자들의 폭력성만 크게 부각하며 복면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홍콩에서의 ‘복면금지법’은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법인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현재 세계에서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15개국으로 프랑스, 캐나다,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 등 주요 선진국들을 포함하고 있다. 의외로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이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억압하는 것 같은 이 법이 어떤 경위로 선진국들에 남아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에서는 2015년 기준 15개의 주(뉴욕, 캘리포니아, 미시건, 조지아, 플로리다 등)에서 복면금지법을 시행중이다. 많은 주에서 20세기 중반에 ‘복면금지법’을 만들었는데, 주로 정체를 숨기며 흑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단체인 Ku Klux Klan(KKK)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에서의 복면금지법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하나는 일반 범죄를 범하는 동안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criminal anti-mask law로, 범행 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면 가중처벌을 받게 하는 법이다. 다른 하나는 범죄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공장소에서 신원을 감추는 것을 금지하는 general anit-mask law가 있다. 이 법은 예외로 하는 경우(축제, 행사 등) 이외에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시위를 하는 경우 체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21세기에는 2011년에 ‘월가점령시위’ 참여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뉴욕 주 경찰이 이 법을 이용한 사례가 있다.
1999년 KKK의 분파인 american knights가 마스크를 쓰고 퍼레이드를 하려고 하자 뉴욕시 경찰이 복면금지법을 근거로 퍼레이드를 불허하였고, american knights는 이에 대해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연방법원에 소송하였다. 2004년 연방법원은 뉴욕주의 복면금지법이 역사적으로 폭력을 방지하고 범법자에 대한 체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american knights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렇게 미국에서는 복면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쪽과 공공안전을 이야기하는 쪽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홍콩의 ‘복면금지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홍콩의 정부는 완전히 민주주의적인 정부는 아니기 때문에(홍콩의 행정장관은 중국의 국무원총리가 임명하는 임명직이다.) 이런 비교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애초에 전 세계의 ‘복면금지법’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다. 특히 강력한 정부가 있는 국가, 민주주의가 완전히 발전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특히 ‘복면금지법’은 공공안전 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홍콩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서 점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고 중국 군대는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출동 대기중인 상태에 있다. 국가의 강력한 힘 앞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복면금지법’은 시위 참가자들을 탄압하려는 위선적인 조치일 수 밖에 없다.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복면금지법’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가 격화되던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폭력, 불법집회”라며 맹비난 했으며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할 것이다”라며 복면 시위대를 “IS”에 비유해 비판했다. 국무회의 다음날인 25일에는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을 대표 발의자로 하여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복면금지법)’이 발표되었다. 이 개정안의 내용은 다음 내용을 새로 추가한다: “폭행, 폭력 등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집회 또는 시위의 경우에는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복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고, 주최자의 준수사항을 거듭 위반하는 경우에는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한다”. 이 역시 명목상의 “질서유지”를 이유로 복면의 착용을 금지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면 질서가 유지되고 공공안전이 확보될 것인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원확인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정부가 경찰력을 이용해 시민들을 규제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의 ‘복면금지법’은 명백하게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을 억압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으므로 반대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복면금지법을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힘든 이유가 한가지 있다. 복면금지법은 인터넷 실명제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익명의 이름 뒤에서 이루어지는 혐오표현의 남발과 소수자에 대한 탄압 등은 분명 멈추어져야 할 부분이다. 복면과 같은 익명성은 양날의 검이다. 정부에 대항하여 시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방패가 될 수 있는 한편, 소수자에 대한 무자비한 칼로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홍콩의 경우는 소수자들을 보호하려는 취지보다는 정치적 탄압의 의도를 너무도 확연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로 작동하는 ‘복면금지법’은 확실하게 저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https://news.joins.com/article/23595339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004/97734266/1
https://www.yna.co.kr/view/AKR2019100809530007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297
https://www.yna.co.kr/view/AKR20191022177600074
https://en.m.wikipedia.org/wiki/Anti-mask_law#United_States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97106
https://qz.com/1721901/hong-kong-anti-mask-law-a-history-of-mask-bans-around-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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