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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쎄이

소심한 사람인가 평화주의자인가

by Major Tom 2020. 1. 21.

처음으로 써 보는 에세이. 그냥 두런두런 일상 얘기나 해보고자 한다. 어차피 블로그 찾아서 들어오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으니 어디서도 못하는 얘기 여기다 풀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온라인 공간이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들어와서 자유롭게 관람(?)하고 가는 것이 가능하니까 완전하게 프라이벳한 공간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은 간사하게도 숨기고 싶은 동시에 자랑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SNS도 어떨 때는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공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심리를 적어도 나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어떨지 모르겠네

요즘은 꾸준하게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헬스장을 간다. 이제 어느덧 한달이 되어가는데 헬스장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다. 동네 헬스장이라서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이나 아저씨들이 많이 쓴다. 오후나 저녁에는 사실 가본적이 없어서 그 시간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운동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가는 아침 시간대에는 내가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 

무분할 운동 패턴을 유튜브에서 봐서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데, 오늘의 헬스장 일정을 다른 날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건이 가슴 운동을 하는 도중에 발생했다. 벤치프레스를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바벨을 움직이며 운동하고 있었다. 3세트째를 마치고 잠깐 쉬고 있던 찰나 어떤 할아버지가 자신의 운동 장갑을 내 자리에 터억 내려 놓더라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장갑을 내려놓고 옆에서 몸을 풀고 계셨다. 나는 순간 멍해져서 장갑을 치워야 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 고민했다. 장갑을 치우고 싶은 마음이 꽤 컸지만 또 바닥에 내려놓게 되면 민망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망설이던 찰나 그 할아버지가 나한테 오더니 다른곳에 가서 하라고 손짓을 하더라. 잠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특별히 거부의 뜻을 드러내지 않고 나는 반대편 자리로 옮겼다(심지어 벤치프레스를 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더 남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로 온 것이었다). 나는 쿨한척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역시 속일수는 없더라. 그 순간 말한마디 하지 못하고 소심하게 다른 자리로 이동한 것이 마음에 걸려 계속해서 나머지 운동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차피 내가 하는 운동은 그 자리가 아니라 어디서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굳이 마찰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평화주의적인 생각으로 내 행동을 정당화해보려고 수도 없이 생각했으나 오늘 하루종일 그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계속해서 생각났던 것은 아니지만 한번씩 떠오르는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소심함을 감추고자 평화주의자인척 위장했지만 오늘은 실패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내 자리에 대한 권리를 위해 맞서 싸웠어도 무언의 후회가 남아있었을 것 같긴 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