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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쎄이

세대의 틀을 쉽게 벗어나기는 힘들다.

by Major Tom 2020. 8. 6.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고, 대략 이 사건으로부터 1달이 지난 지금, 핫이슈로부터는 멀어진 듯하다. 안희정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박원순 사태만큼 국민이 양분된 사건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포털사이트나 신문 등에서는 본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박원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국민 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갈리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박원순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성희롱, 성폭행 사건을 피해가려는 것은 굉장히 부적당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정황상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러한 방식은 마지막까지도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피해자는 제대로 고소를 진행하지도 못했고, 이후 사건이 진짜 일어났었는지에 관해 국민들로부터 의심을 받았고 또 국민에 대하여 해명까지 해야했으며,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신상정보가 알려지는 피해를 입었고, 가장 큰 문제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가해자 대신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것도 모자라 이후 쏟아지는 비난(심지어 비난받았다...)과 2차 가해를 모두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박원순씨가 피해자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려고 했었다면 오히려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정식으로 조사와 재판을 받는 길로 나아갔어야 할 것이다. 그가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정당에 가해지는 피해를 막으려 했었는지 또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이제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이렇게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 인권 변호사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았던 그의 삶과 굉장히 모순이었다는 점이다. 

박원순씨가 실제 피해자에게 어떠한 언동을 했었는지 밝혀지는 것 또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밝혀져서는 안된다(하지만 기사가 나왔다). 피해자에게는 그 내용이 반복되어서 전달되는 것 또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성희롱, 성폭행을 받았는지 알아야 할 사람은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 뿐일 것이다. 국민 전체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린다 한들 그에 따라 얻어지는 실익이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피해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까지. 벌써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큰 권력형 성범죄 사건만 3건이 발생했다. 오거돈씨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두명은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던 사람들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이들은 과연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일까? 비슷한 나이대에서, 비슷한 세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원인을 가볍게 고찰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 세대에서의 이런 행위는 어쩌면 흔히 용인되었던 (용인된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성 직원을 "꽃"이라고 비유하는 것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세대, "여직원이 따르는 술이 더 맛이 좋다"라는 말에서도 성차별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런 세대였던 것이다. 사실 여성인권은 201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신장한 측면이 있고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감수성과 문제의식은 80년대에는 진보적이었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권력형 성범죄는 아직도 많이, 그리고 흔히 발생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대가 공유하는 의식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성범죄의 면책사유가 되지 못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권력형 성범죄는 확실히 뿌리뽑아야 할 것이다.